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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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장위동은 서울의 다른 동네에 비하여 특히 더 가난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밑에서 자라던 우리 집도 마찬가지였구요...
할아버지께서는 장위동이 발전을 못하는 이유가
"우리 고흥문이가 여기 국회의원이라, 박정희가 압제를 심하게 하기 때문이야."
라고 말씀하시고는 하셨습니다.
1960년대 말...
국민학교 초학년에 불과했던 저는
학교에서 누누이 강조한 '위대하신 박정희 대통령'과 할아버지가 강조한 '압제'라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에
심각한 혼동을 가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사실... '위대하신 박정희 대통령'의 압제는 60년대에는 그다지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었고,
이후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는 70년대에 들어와서야 그 위용을 발휘합니다.
다행인지... 할아버지께서는 최고조에 달한 '위대하신 박정희 대통령'의 진정한 위용은
보지 못하시고 돌아가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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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 그의 딸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을 봅니다...
할아버지 생각이 나서, 옛날 사진을 찾아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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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작가 미상
촬영시기 1933년 또는 1934년 (할아버지께서 서른 살이 되시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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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 지방이나 시골에 비해서 서울 지역은 그곳이 어디든 사실 '못 살았다'라는 말을 붙이기는 어색할지 모르겠습니다.
명색이 '서울특별시' 관할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장위동은 구 장위동과 신 장위동으로 구분되는 데,
신 장위동은 70년대에 이미 부촌으로 소문난 곳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구 장위동은 제가 마지막으로 있던 1986년까지 서울시에서 하월곡동과 함께 가장 경제수준이 낮은 동네였던 것도 사실입니다.
(2012년 12월20일 0시 48분 추가 ; 한국시간 오전 8시 48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