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물화
스페인 바르셀로나, 2011
파리를 경유해 오는 동안 비행기에서 최대한 많은 술을 마시기 위해 노력했는데
짐을 풀자마자 비를 맞으며 슈퍼에 들려 모엣샹동 한병을 또 챙겼다.
물론 돌아오는 길에 하몽 한 조각에 맥주도 한 잔 걸쳤다.
아침에 일어나자 술병에 단단히 걸렸다. 몸은 좀처럼 말을 듣지 않고 잠잠하던 두통이 도졌다.
허기와 숙취를 다스려 보려 람브라스 거리의 보께리아 시장을 찾았다.
화려한 색깔의 열대과일, 천장에 수없이 매달린 돼지 뒷다리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러다 어느 정육점 앞 냉동고와 마주쳤다.
순간 이 죽은 고기들의 배열을 보자 갑자기 램브란트의 정물화가 떠올랐다.
벌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고새와 토끼는 스페인의 흔한 식재료이다.
꺼꾸로 매달리고 목이 꺾인 채 쇠고리에 걸려 붉은 피를 뚝뚝 흘렸다.
기괴함 때문일까? 낯설음 때문일까?
자꾸만 카메라를 꺼내 이 죽은 고기들을 유심히 들여다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