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집마다 벽보가 붙었다.
유성펜으로 휘갈긴 벽보의 문장은 절박하고 급박했다.
분노와 슬픔, 애원과 간청의 감정들이 글자 속에서 휘몰아쳤다.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자신의 집에 그렇게 벽보를 붙여놓았다.
재개발이 되면 그곳에 살던 많은 사람들은 그곳에 살 수 없다. 분양되는 아파트를 그들이 받는 보상금으로 살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쫓겨난 그들은 이 도시를 떠날 수 없기에 또다른 '불량' 주거지로 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재개발로 또다시 쫓겨날 것이다. 그들이 마을에서 쫓겨나는 순간 난민이 되는 것이다. 재개발로 만들어지는 수많은 이윤들은 몇몇 정치인, 투기자본과 건설회사가 가져갈 것이다. 그들은 재개발로 그들의 부를 유지하고 키워왔다. 오늘날 자본주의 얼굴은 비정하고 잔인하다. 분배의 형평성은 사라진지 오래이고, 가진 자가 그렇지 못한 자의 모든 것을 뺐는 짐승의 세상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나와 당신은 사람이다.
사람은 서로 기대어 산다.
자본의 논리를 넘어서 사람의 입장에서 재개발을 보자. 그들의 집은 불량 주택이 아니다. 그들의 마을은 불량 거주지가 아니다. 오래되었다고, 반듯반듯 하지 못하다고, 불편하다고 무너뜨릴 수 없다. 그 집과 마을에는 사람이 산다. 우리는 사람이다. 사람은 서로 기대어 산다.
2012. 9
서울 성북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