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l disappear' 사진시리즈
미련으로 여물어버린 삶과 생명의 애착을
쌓인 먼지 털어내듯 속 시원히 떨쳐버릴 수 없고,
죽음이라는 것으로부터 태연해질 수 없는
나 자신 안에서 이 작업은 비롯된다.
엄마 뱃속에서 갓 태어난 아기는 살기 위해 첫울음을 터뜨린다.
그러한 행동은 학습된 게 아니라 본능에서 나오는 자기 방어이다.
모든 생명체의 첫 번째 사명은, 자신의 생명을 죽음으로부터 지켜내는 것.
내게 있어서 이 사진 작업은 첫울음이고, 삶의 발버둥이며, 인생의 아쉬움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하나같이 강한 생명력으로 꿈틀댄다.
응급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도심 대로를 달리면 모든 차는 가던 길을 내어준다.
인류는 도로 위에 노란 중앙선을 명확히 긋고는 생명선이라 변칭하고,
위험이 도사리는 세상 곳곳에 초표를 세우고는 안전을 제창한다.
인류는 머리를 싸매고 의료기술을 나날이 발전시켜왔고,
앞으로도 나날이 발전시켜나갈 것이다.
인간은 공해로 찌든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건강을 지키기 위해 너도나도 참살이 흐름에 동참한다.
몸에 이로운 영양소들을 섭취하려 노력하고,
담배를 끊고, 술을 줄이고, 운동으로 땀을 흘리며 애쓰는
이 모든 행위가 죽음과 맞서며 죽음을 멀리하려는
인간의 본능이 은연중에 뒷받침하고 있음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이러한 행위들로,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가?
단언하건대 그러하지 못하다.
인간은 그저 죽음에 대항할 뿐, 죽음을 떼 낼 순 없다,
평생을 따라다니는 어두운 그림자처럼.
인류의 눈부신 발전으로
사람들은 세상에 존속해야 할 이유가 더 커졌고,
거기에 비례하듯 사람들의 평균 수명은 더 늘어났다.
어찌 보면 그것은 인간의 욕심이 좀 더 팽배해졌음을 말해준다.
중국대륙을 호령했었던 진시황에게
죽음은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그 무엇이겠지만,
더는 갈 곳이 없는 거리의 노숙자에게는 그렇지 아니하다.
인간은 죽음 앞에서
때로는 고뇌하고, 때로는 애원하고,
때로는 강해지고, 때로는 약해진다.
어떤 부당한 구속에도 얽매이지 않은 자유의 몸으로
나는 복에 겨운 호사를 누리고 있으면서도,
나는 자유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가여운 병자이다.
티베트의 천장(天葬)이라는 의식에 대해
아직도 서늘함을 감출 수 없고, 잘 이해하지 못하는 나에게
이 작업의 끝은 도저히 예상할 수 없는 첩첩산중 너머에 있다.
짐작할 수도 없는 그 끝에 나는 당도할 수 있을까...
여혹,
이 작업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찬연한 날이 온다면,
삶의 고통은 하늘로 돌아가기 위한 오르가슴이고,
죽음은 하늘로 오르기 위한 환희의 날개라고, 말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