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무니
가끔 고향에 내려가면 아들 손에 들려 있는 카메라가 싫지는 않으셨던 모양이다.
한번은 엄마가 당신의 사는 모습을 누가 사진으로 다 찍어서 남겼으면 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 말을 처음 듣고 무심한 아들은 신통찮게 반응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반찬 만드시는 모습이나
김장하는 모습, 장 담그는 모습, 비닐하우스에서 힘들게 일하시는 모습 등을 꼭 멋지게 찍어 드리리라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늘 명절이나 가끔 휴일에 들렸던 나는 엄마의 일거수 일투족을 담는 프로젝트(?)를 맘속에 담아 두기만 했을뿐
쉽게 실행하지 못했다.
그때는 아직 시간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다.
결혼도 하고 손주들도 생겼으니 더 좋은 모습을, 더 행복한 모습을 카메라에 곧 담아 드리리라 마음을 먹고 있었다.
이제 더이상 엄마를 카메라에 담을 수 없는 현실이 너무 힘들다.
그동안 망설인 나도 너무 원망스럽고
이제는 지난 사진들을 정리하는 것도 너무 힘들다.
사진을 정리하다가 여기저기서 엄마가 나타나면 다시 처음처럼 먹먹하다.
이젠 별의 별의 것들이 다 신경쓰인다.
어렸을때 팔로 눈을 가리고 자면 엄마가 일찍 돌아가신다는 얘길 한적 있다.
그 얘길 들은 후로 의식적으로 팔등으로 눈을 가리고 잔적은 없었지만 혹시 나도 모르게 그런적이 많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고향에 내려가면 아버지 앞에서는 강한 아들인척 해야하고
엄마의 무덤앞에서는 길 잃은 아이처럼 눈물이 흐른다.
아이들 입에서 엄마가 연습 시키던 '할무니'라는 말이 또렷이 들릴때 마다 너무 안타깝고 엄마가 더 그립다.
조금 있으면 엄마 생신도 다가 오는데 정말 어떻게 견뎌야 할지 막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