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생각을 낳는 사람
생각을 낳지 못하는 사람은 온전한 사람이 아닙니다.
파스칼의 말이 아니더라도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가장 큰 힘이
생각에 있음을 어느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생각에 사로잡히는 것을 망집이라 말하면서
생각을 없이하자는 불교의 공도 따지고 보면 골똘한 생각의 결과입니다.
하여 생각하는 존재로 태어난 우리는 어미닭이 날마다 알을 낳듯이
내가 가진 모든 힘을 기울여 생명의 생각을 만들고 키워야 합니다.
하지만 계란에도 무정란이나 곯은 달걀이 있듯이 생각 또한
생명을 담지 못한 공허한 관념이나 썩어 악취나는 망념이 적지 않습니다.
얼마 전 어느 초등학교 선생님이 성적에 따라 아이들을 계급으로 나누어
귀족, 평민, 노예 등으로 서로를 부르게 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그 선생님의 엽기적인 발상도 물론 문제지만 저를 더욱 기함하게 만든 것은
이 모든 것이 학생들의 성적을 올려보려는 교사의 열의 때문이라는 학교 당국의 변명이었습니다.
무뇌 정부가 일제고사 행진곡을 울려대며 인사와 예산으로 겁박하는데
일개 학교와 교사가 무슨 힘으로 저항할 수 있겠냐며 항변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모든 국회의원이 하나의 헌법 기관이듯이 이 땅의 선생님들 또한
한 분 한 분 모두가 헌법적 가치와 교육의 이념을 체현해내는 독립 인격입니다.
그러한 자부와 기개가 우리 선생님들 속에 살아 숨쉴 때 비로소
질식의 학교가 생명의 공간으로 탈바꿈할 수 있습니다.
선생(先生)은 누구입니까? 손쉬운 글자 풀이대로 먼저 난 사람이 선생인가요?
먼저 나서 선생이라면 세상 모든 이가 선생이라는 얘기인데 그럴 리는 없지요.
선생은 아무나 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왜냐하면 선생은 먼저 깨쳐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덮누르는 설익은 이념의 파당성이나 완고한 보수의 껍데기를 부수고 나와
자신만의 생각으로 우뚝 선 독립된 인격의 존재가 바로 선생입니다.
그러한 선생님만이 올바르고 기름진 생각의 토양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은 생각의 땅이 갖추어질 때 비로소 우리는 거기에 내일을 심을 수 있습니다.
깨쳐난 선생님이 그립습니다.
쉼없이 생각의 밭을 쟁기질 하는 근실한 농부의 심성을 닮은 선생님이.
레이소다의 jeri 님처럼 사랑하는 아이들을 위해 관리자들과의 불편한 싸움을 마다않는
늙고 다정하고 용기 있는 '생각하는 선생님'이 보고 싶습니다.
2012. 6. 효명고등학교 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