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엣가시 '목엣가시'는 사전에 없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제가 이 말을 쓰는 이유는 제 목에 박혀 있는 오래된 가시 하나를 이야기하기 위함입니다. 열여덟 해 전, 아버지께서 사고를 당하시던 바로 그 전날 저녁 저는 아버지께 참으로 무람없이 대들었더랬습니다. 더없이 좋은 아버지셨건만 길 가다 쓸 만한 물건이다 싶으면 주워들이는 당신의 습관에 저도 어머니도 더 이상 견딜 재간이 없었던 게지요. 아버지조차 큰소리 한번 낸 적 없는 집안에서 막돼먹은 이 자식놈은 목소리를 높여 당신을 마구 성토했습니다. 허나 협량한 아들의 참람하기만한 하극상에도 당신은 분기조차 내색않고 그냥 "그래, 알았다. 앞으로 내 조심하마."하고 마셨지요. 그리고 다음날, 저는 출근하시는 당신의 뒷모습에 안녕히 다녀오시라는 인사조차 건네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당신께서 돌아올 수 없는 마지막 길이 될 것임을 꿈에도 생각지 못하면서. 아버지께서 병원에 누워 계시던 마지막 일주일 동안 저는 당신의 소생을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랐습니다. 하지만......... 다시 열여덟 해가 흘렀습니다. 녹슬지도 또 삭아 없어지지도 않는 이 무형의 가시를 지닌 채 당신의 맏아들은 어느덧 마흔 다섯의 중년이 되었습니다. 연민한 삶의 길에서 저는 새삼 당신이 짊어졌던 삶의 무게를 가늠하게 됩니다. 그때마다 저는 당신의 아들로 산 27년의 시간을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합니다. 하여 저는 당신께서 기꺼이 자신의 골육을 태워 이 자식을 고이셨던 순간들을 떠올릴 때마다 당신께 드렸던 그 상처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가시로 박혀 목이 메어옵니다. 허나 그 회한의 시간은 당신을 대면하는 기쁨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울먹해진 내 영혼 위로 부드럽게 내리는 당신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2012. 6월, 청양 선영
자투리
2012-06-20 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