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노릇이 지겨우냐
깡패나 사기꾼이 아닌 속리(俗離)의 중놈들이 연일 사회면을 장식하고 있다.
폭행, 강간, 사기, 도박과 같은 죄목이 시정의 여느 잡놈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고려 말에 그랬듯이 장삼과 가사만 두른 부라퀴들이 전국의 절집마다 넘쳐난다.
점잖으신 어떤 분들은 게거품 무는 나 같은 사람에게 이리 말할 지도 모르겠다.
문제되는 놈들이사 어느 시대에나 늘 있었던 것이고 대부분의 스님들은 수행 정진에 힘쓰고 있다고.
일부 부도덕한 사판승의 문제를 이판승 전체의 문제로 일반화하지 말라고.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스님들 대부분이 그렇게 용맹정진에 힘쓴다면 존경스런 비구들이 절집마다 넘쳐날 터인데
어찌하여 현금의 불자들은 이미 한 줌의 재로 변해버린 법정이나 성철 그리고 숭산을 그렇게도 그리워하는 것일까.
막돼먹은 중놈이 도반의 사형을 폭행하는데 중앙종회 의원이란 이유로 호법부가 침묵하고,
열반하신 큰스님의 재를 지내러 와서 밤새워 투전하는 것도 소일거리 없는 중들의 놀이 문화의 일환이란다.
여보시오, 스님네들. 소일이란 말이야말로 다산이 가장 혐오했던 단어라는 걸 아시오?
촌음을 아껴 불법승 삼보를 닦아야 할 사람들이 소일이란 단어를 입에 올렸을 때
그대들의 영혼은 타락할 대로 타락했음을 자인한 거라는 걸 아셔야지.
그대들이 해인사에 비까번쩍하게 부도탑으로 장식해 놓은 누더기 성철이 이 모습을 본다면 뭐라겠소?
예끼, 이 되다 만 중놈들아.
계정혜 삼학을 내던지고 술과 여자와 화투장을 그러안고 너희들이 이르려는 곳이 어디더냐.
삼봉의 불씨잡변과 같은 철퇴를 다시 한번 맞고 속리의 산중으로 쫓겨가야 정신을 차리려느냐.
지난 가을 해인사에 갔을 때 나는 한국 불교가 노정하는 상업화의 양상을 보고 기함할 뻔 했다.
매화산정에서 바라본 고즈넉한 풍경과는 달리 산문 밖에서는 각설이의 뽕짝이 낭자하고
온갖 장사치들이 빼곡이 들어차서 오가는 이들을 다투어 꾀고 있었다.
해인사 산문에 쓰인 해동제일도량이란 현판이 무색해서 우리 일행은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종교의 타락은 그 사회가 얼마나 타락했는가를 보여주는 증좌이다.
스님들아, 이제 제발 산문을 닫아 걸고 공부도 하고 기도 좀 하려므나.
성전을 더럽히던 장사치들을 향해 일갈했던 예수의 사자후를 떠올리면서 말이다.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
2011년 가을, 해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