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은 무겁고 길은 멀고
士不可以不弘毅 任重而道遠
증자의 말로 내가 논어에서 가장 사랑하는 구절 가운데 하나다.
선비는 넓고 굳센 마음을 지니지 않으면 안 되니 짐은 무겁고 길은 멀기 때문이다.
북한산 종주의 끝자락에 선 백운대를 바라보며 마지막 호흡을 가다듬는 동안
나는 이 구절을 떠올리며 험로를 먼저 걸어간 우리 역사의 선비들을 생각했다.
율곡, 다산, 육사, 그리고 김근태.
또라이 선조 밑에서 소득 없는 뺑뺑이를 돌면서도 한시도 개혁의 꿈을 놓지 않았던 비운의 천재 율곡.
폐족의 신분으로 썩어 넘어가는 조선의 개신을 위해 쉼없이 노력했던 근면과 성실의 사람 다산.
퇴계의 후손으로 망한 조국을 위해 기꺼이 썩은 밀알이 되고자 했던 불굴의 인간 육사.
그리고 김근태.
바보 같고 바보 같고 또 바보 같았던 원칙의 사람.
자신의 육체를 갈기갈기 찢은 원수까지 기꺼이 용서했던 너른 마음의 사람.
민주주의라는 역사적 소명을 종신의 순간까지 한순간도 외면하지 않은 굳센 의지의 사람.
식당의 냅킨 한 장도 함부로 쓰지 않았던 검약의 인간이자 농담조차 함부로 할 줄 몰랐던 진정의 사람.
야당하던 인간치고 권노갑 돈 안 먹은 놈 어디 있다고 자진납세로 대통령의 꿈을 스스로 접은 양심의 사람.
아, 순정했던 영혼의 인간으로 살다 간 그를 생각하며 작금의 현실을 돌아보니 그저 한숨만 나온다.
딱풀은커녕 물풀만도 못한 통진당의 통합이라는 수식어와 진보의 레테르는 이제 시궁창에나 갖다 버려라.
명백한 부정과 탈법을 정의와 합법으로 덧씌우려는 그 후안무치함은 도대체 어디서 연원하는가.
수십 년 숙성된 NL의 권력의지는 참으로 경이로우나 우리는 댁네들의 악취를 더 이상 견디기 어렵다.
인간다움을 또 양심을 저버리고 그대들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대들의 눈을 가리운 권력을 향한 탐욕을 내려 놓고 이제 다시 역사와 민중의 짐을 대신 짊어지라.
그대가 즉자적 인간에서 대자적 인간으로 전회했던 그 순간의 의로운 분노와 소명을 기억하라.
그대에게 또 우리에게 짐은 무겁고 가야할 길은 아직도 멀다.
2011년 만추, 북한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