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렁이
4.11 총선이 '붕대 손' 박근혜의 압승으로 마무리되던 12일의 새벽녘,
도올은 예레미야의 애가(哀歌)를 읽으며 착잡하고 슬픈 마음을 달랬다지.
그리고 그날 자신의 새로운 호를 하나 지었는데 그것이 지은(地隱)이란다.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나는 그가 자각한 천명을 쉬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 이제 도올은 지렁이가 되려는구나.
땅으로 깊이 숨어 우리 눈에 보이진 않지만 그 어떤 황무한 땅도 옥토로 일구는 지렁이.
지렁이야말로 무명의 어둠 속에서 묵묵히 천명을 실천하는 지중(地中)의 군자가 아니더냐.
도올 또한 위대하지만 일반인에게는 딱딱하기 이를 데 없는 진리의 토양 속으로 깊이 들어가
그의 남은 생애를 모두 바쳐 고경(古經)의 밭을 일구어 나가려는 게지.
물론 광대의 성정이 충만한 그가 온전한 은사의 삶을 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 자신이 또 그의 말을 기다리는 대중의 바람이 그를 땅 밖으로 이끌어낼 것은 불문가지일 터.
허나 노론의 성세가 다산을 독실한 학자의 삶으로 이끌었듯이 도올의 침잠이 조금 더 길어지고
그의 육신과 정신이 한동안 더 힘을 유지한다면 자신이 천명으로 자각한 십삼경 완역의 꿈 또한
온전하게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
황막한 세월에도 부디 강녕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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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번역을 끝내고 없던 머리가 자랐다며 맹자를 찬양하는 동시에
자기 책 읽고 자기 강의 들으면 머리가 날 거라며 생구라 날리시는 빅깔대기 도올. www.hoo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