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묻는 사람 길을 내는 사람 그간 내가 써 온 자호 중의 하나는 '길을 묻는 사람'이다. 문도(問道)는 학인의 삶을 사는 문도(門徒)가 지녀야 할 가장 기본적인 삶의 태도라 여긴 때문이었다. 소심하고 낯을 가리는 나는 한번도 담대히 스승을 찾아가 배움을 청할 맘을 먹지 못하고 다만 선생들의 책을 뒤적이며 언제나 그네들이 걸어간 길의 자취를 더듬기에 바빴다. 앞서 간 이들의 길은 참으로 명료하기 이를 데 없었으나 그 명료하기 이를 데 없는 길들의 명료성이야말로 언제나 내 맘에 끝없는 회의를 불러오는 원인이 되곤 했다. '길을 묻는 사람'의 수동성에 회오가 깊어갈 무렵 나는 벗들과 더불어 혹은 외따로 호젓이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처음 얼마간의 산행에서도 예(例)의 묻는 자로서의 수동성은 그대로였다. 산행을 계획하는 단계부터 남들의 산행기를 일별하여 코스를 확정한 다음 산에 들어서는 반드시 안내 이정표와 먼저 오른 산악회의 리본을 참조하며 내가 나아가는 방향이 올바른지를 수시로 확인하곤 했다. 그러나 언제였을까? 내가 오르는 길이 꼭 정해진 코스가 아니어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과 풍광이 인도하는 대로 발걸음을 달리해도 괜찮지 않을까? 이후 나의 산행은 훨씬 더 자유롭고 풍요로워졌다. 길을 묻고 찾는 자만이 아니라 새로이 길을 내는 이들이 있었기에 저 산들 또한 골짝 골짝마다 저마다의 길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닌가. 암중 속에서 또는 농무 속에서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젊은 벗들에게, 닥쳐올 혹은 다가갈 길들의 불확실성에 불안해하는 그대들에게, 같은 고민을 하며 덧없이 늙어온 우활한 이 사람이 한 말씀 드리고 싶다. "길을 묻는 사람이 아닌 새 길을 내는 사람이 되시오." "출세한 선배나 알량한 권위자의 말이 아닌 당신 자신의 거짓 없는 맘에 귀기울이시오." "값싼 연민이나 위로의 수사를 떨치고 그대의 산을 향해 묵묵히 걸음을 떼시오." -속리의 문장대를 바라보며, 2012. 3.14. 자투리
자투리
2012-03-23 1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