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나무
충청도 청양군 대치면 장곡리... 칠갑산 입구
몇백년 묵은 정자나무...
그 집이 우리 조상 경주김씨 계림공파가 모여 사시던 곳입니다.
현재는 큰아버지가 정자 슈퍼와 정자 민박을 하고 계십니다...
1940년 10월 15일 8형제중 둘째로 태어나 제대로된 교육한번 못받으시고
서울로 상경하신 아버지는 돈 한번 벌어 보시고자 강원도에서 난생 처음 보는 오징어에
기겁을 하시면서도 고기잡이 배도 타보시고 나무 봇짐도 하셨다고 합니다.
월남전에 참전하셔서 벌어오신 돈을 모두 소를 사서 할아버님께 다 갖다 드리고
느즈막히 결혼을 하신후 ... 여러가지 사업 실패끝에 결국 불모의 땅 사우디 아라비아와
세계 8대 불가사의라 하는 리비아 대수로 공사를 다녀오셨습니다.
미국이 리비아 대통령 카다피 죽인다고 매일 공습할 때 우리 아버지 매일 방공호로
숨으셨고 어머니와 나는 매일 티비 뉴스 소식에 항상 귀기울였습니다.
삶과 죽음의 고비를 멀리 타국에 있는 가족을 위해 바치신 아버지를
이제와 무어라 말씀 드릴 수 있겠습니까 만은
항상 아버지 없는 유년시절과 청소년기를 거친 나는...
앞으로 내가 아버지가 된다면...
절대 내 자식에게는 이 중요한 시기를 함께 있어주리라...
맹세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아버지를 아시는 모든 분들은 이구동성으로 아버지가 착하시다고 하십니다.
물론 착하다고 모두 행복할 수 많은 없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효도 한번 못해드려 65의 연세에도 아직까지 몸으로 하시는 일을 하고 계시는
아버지를 보면 정말 ... 나는 나쁜놈이란 생각도 듭니다.
" 얘야.. 아직까지는 괜찮다.. 앞으로 5년만 더하고 그후로 니 신세좀 지고 살자 "
항상 아버지를 볼때면 말없는 저 정자나무가 생각납니다.
글쎄요.. 왜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
항상 사진을 찍건만 아버지 사진은 몇장 되지도 않네요...
구정 첫날 아침 제사를 마친후 ..
정자나무 아래에 계셨던 아버지...
그리고 이제.. 저도 두아이의 아버지...
넋두리 늘어 놓아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