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erra Leone
Photo By Skyraider
2011.12.02
Sierra Leone, Stevedore Mr. Mugamba
아프리카 서해안을 따라 북상 중인 본선은 어느새 유명한 도시들을 차례로 지나고 있단다.
방금 세네갈의 다카르를 지났고(파리에서 다카르까지 달리는 자동차 경주로 유명하지), 내일쯤 모로코의
카사블랑카를 지나 카나리아스 제도의 라스팔마스를 가로질러 4일후엔 지중해의 입구인 지브롤터 해협에
다다르게 되지. 지나치는 나라나 도시만을 열거한다면 그야말로 세계를 일주하는 여행가처럼 보일테지만
그저 바다에서 멍하니 바라보며 지나는 입장을 생각해보면 '走馬看山'이란 사자성어가 딸 들어맞는 것이
지금 나의 일이란다. 뭐 내 핸드폰의 사업자인 KT도 내가 뭐 하는 놈인지 참 궁금해할거란 생각도 드네.
두 달 사이에 남아공부터 세네갈까지 아프리카 최남단에서 최북단까지 주욱 열거되는 로밍내역을 본다면
말이야. ^^
엊그제 떠나온 시에라리온은 북한보다도 못사는 나라로 첫인상은 정말 기나긴 식민지 시절과 바로
몇 해전까지 내전에 시달린 나라라는 선입견이 대부분 그대로 들어맞는 상황의 나라였단다. 예전 김혜자
아주머니가 이곳의 어느 소년을 만나고 정말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본적이 있는데 스쳐지나는
항해자의 눈에는 그렇게 깊게 보이진 않았고 그저 입항 때부터 이런저런 어거지로 아예 선내 면세품점과
부식창고를 거덜내는 공무원들과 에이전트들에게 들들 볶이고 나서 정말 '징글징글한 후진국'이란 인상만
첫인상으로 박아넣었지.
하지만, 그 파렴치한 공무원들이 지나가고 나니 선량하고 욕심없이 사는 일꾼들이 그 자리를 채우더구나.
늘 웃으며 인사도 먼저 건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먼저 걸어오는 호기심 많은 그들 덕분에 하루하루를 즐겁게
지낼 수 있었지. 물론 여전히 밉상인 본선에 상주하던 에이전트가 성질을 건드리기는 하지만(본선 부식냉장고를
자기 집 곳간으로 여기는)그외의 대부분 친구들은 인상도 좋고 그 인상만큼 선량한 사람들이었단다. 없이 살아도
낙천적이고 늘 밝게 생활하는 그들 사이에서 그저 좋은 세상, 좋은 나라에 태어나 호의호식하고 살아온 스스로가
잠깐 부끄러워 지더구나. 내 눈에는 희망도 없고 답답한 그들의 상황임에도 낙천적으로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욕심없이 사는 사람들. 혹자들은 '그래서 발전이 없는 것'이라 그들을 평할지 모르지만 월급 50달러로도 충분히
행복해하던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월급 4000달러도 모자르다고 생각하던 나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지.
돈이 전부가 아닌데...그래도 벌어야 한다...하지만...뭐 이런 복잡한 생각들이 머릿 속을 오락가락하더구나.
요즘들어 대책없이 낙담하던 삶에 적잖은 화두를 던진 기항지였단다, FREETOWN, CIERRA LEONE.
아마도 당분간 그곳을 잊지 않고 살게될 듯.
아프리카 앙골라와 시에라리온을 거치면서 배의 부식도 바닥이 났었는데 모처럼 신선한 생선과 과일도 싼값에
만날 수 있었던 것도 큰 행운이었지. 수십개의 바나나가 매달린 바나나 나뭇가지는 5불, 민어로 보이는 커다란
생선 6마리에 15불, 잘익은 파파야 30kg에 10불, 어른 주먹 두개를 합친듯한 코코넛 10개가 5불에, 여기저기
찌그러져 못생기기는 했어도 커다란 크기에 맛도 일품인 파인애플이 40개에 10불....^^
아무리 답답한 상황이라도 긍정적인 생각 - 예) 맛난 음식 - 으로 그 상황이 모면되는 것을 스스로 느끼면서
여전히 단순한 스스로의 상태(?)도 진단하는 계기가 되었으니 이번 아프리카 서부 기행은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는듯 싶구나. ^^ 이래저래 막바지로 달려가는 이번 승선생활의 마무리도 이처럼 의미있게
마칠 수 있기를 스스로 다짐해본다.
완연한 겨울로 들어섰을 서울의 날씨에 굴하지말고 씩씩하게 달려가는 날들이길 기원하마.
2011년 12월 13일,
모리타니아 근해를 지나는 CS DAISY호 선교에서,
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