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소년. #. 언니 몰래 먹는 딸기오레1. "오빠, 저 실은 남자친구 있어요" 안다. 너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아니, 너를 처음 알았을 때부터 나는 알았다. 네 남자친구는 나보다 두 살이 많은 젊은 사업가이며 학벌이 좋타는 것은 물론 배기량 5500cc V8 엔진을 장착, VAT 포함 차량가격 이억 원에 육박하는 벤츠 CL500의 주인이라는 것도 나는 알고 있다. 낡은 벤츠를 모는 늙은 남자가 아닌 젊은 벤츠를 모는 젊은 남자를 네 남자친구로 선택할 수 있으리만치 네가 아주 예쁜 것도 나는 아주 잘 안다. 아울러 네 남자친구와는 6주년을 막 넘겼으며 젊고 세련되었으나 명징한 S 라인을 구사하는 너와 달리 가벼운 D 형의 몸체를 유지하고 있음으로 그 스타일과 몸매에서 나에 비해 한참이 밀리는 현실을 지니고 있다는 것까지도 나는 또 아주 아주 잘 알고 있다. 나는 그 어떤 누구를 만나던 간에 남자친구의 유무에 대한 물음을 금기시한다. 남자친구가 없다는 답이 나와도 이는 직설적이며 노골적이라 멋이 없다. 남자친구가 있다는 말이 나온다면 사태는 더더욱 악화, 그때부턴 지랄맞은 윤리 개떡같은 도덕이라는 장애물이 성립되기에 복잡해지고 난감해진다. 제 아무리 물증 가득한 99%의 추측이라도 추측은 그저 추측일 뿐 사실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입을 통해 나오는 순간 그것은 사실이 된다. 그 사실은 거짓보다 형편 없으며 대략 이만삼천 사백오십 네 배즘 나쁜 거다. 나는 묻지 않는다. 허나 상대가 물어왔다면? 일은 쉬워진다. 그래서 네가 고마웠다. 여자친구 있냐고 물어봐 준 네가 더 예뻐 보였고 더 명확해 보였다. 질문을 받았으니 돌려주어야 할 터, 그럼에도 넌 있어? 라고 묻지 않는 내게, 저도 없어요, 라고 말해준 그러니까 있는 것 뻔히 아는 내게 없다고 뻥을 친 네가 나는 단무지 두 줄 넣은 참치고추김밥 보다 더 좋았다. 영화를 보러갈 때마다 먹는, 아주 오랫동안 먹어 온, 맥주와 함께 환상의 궁합을 자랑하는 단무지 두 줄 넣은 참치고추김밥도 네가 원하기만 한다면 난 단칼에 끝어버릴 수 있으리만치 네가 좋았다. 예뻣다. 참고로 가격은 삼천 원이다. 네 깜찍발랄한 고담백저칼로리 작업멘트에 내 전투력은 활활 타올랐었다. 그리고 그날 밤 우리는 논스톱 아우토반 위를 달렸었다. "아, 그래...?" 짐짓 모른 척 물었다. 물론 답을 요하는 물음이 아니었다. 너도 답하지 않았다. 어색하지 않았던가, 다시 생각해보아도 역시나 무난했다는 선에서 무마될 수 있을 정도였음은 오늘 지금 생각해보아도 변함이 없다. 문제는 지금부터 이다. 네 고백이 뜬금없지 않타면 느닷없는 말 실수가 아니라면 그날 따라 골뱅이 무침이 맛있어서 하는 헛소리가 아니라면, 이는 무언가 심경의 변화를 겪고 있다는 것. 어쩌면 이제부터라도 길을 분명히 하겠다는... 그러니까 종로로 가던 명동으로 가던 차라리 청량리로 가던 가고자 하는 길을 확고히 하겠다는 것일지도...... 네 의지가 불편했다. 그리고 그 불편한 예감 역시도 어긋나지 않았다. "나 그냥 오빠안테 갈까요?" 세상에는 두 종류의 남자가 있다. 첫째, 한 번 잔 여자는 내 여자다, 라고 생각하는 바보들이고 그 바보들은 세상에 꽤나 많은 수치로 존재한다. 그리고 간혹, 한 번 잣으니... 또는 몇 번 잣으니 됬다, 라고 만족하는 머저리들이 그 두 번 째다. 내가 어느 쪽이냐고? 군대시절, 문제가 발생한 통신기계를 몇 시간이고 붙잡고 고치고 고치고 고치던 오 중사가 끝내 그 문제의 통신기계를 고치고 말았다. 이에 김 병장은 이등병인 내게 말했다. "끝까지 해내잖아. 사나이 아니냐?" "아닙니다. 안 되는 건 쿨하게 포기할 줄 아는 게 사나이라고 생각합니다" 라고 답했고 물론 맞았다. 나는 아주 오래 전부터 쿨한 사람이었다. 지나치게 오픈된 마인드를 전제로 진취적이며 도전적이나 제 가진 것의 행복을 아는 나는 청빈하고 청렴한 청년이다. 만족은 결핍에서 오지만 불행은 과잉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나는 안다(라고 한다면 믿을 사람 없겠고, 실제로도 그렇치 않타). 그 사실이 나를 집착에서 구원한다. 다시 말하지만 나 쿨하다. 문학을 전공하는 21살 최양의 감탄을 인용하자면 "오빠 진짜 존나 쿨하네요" 할 정도로 쿨하고 쿨하다 못해 간혹 콜드할 정도로 쿨하다. 내가 그렇타. 그런데... 그러나... 평소대로 쿨해지기엔 넌 너무 예쁘다. 그래서 평소와는 다른 방법으로 나는 쿨해지기로 한다. "음... 나는 충동구매하기 좋은 인간이야. 혹하는 맛이 있지. 나는 네 남자친구가 뭐하는 사람인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지만(실은 대충 알지만), 너하고의 시간이나 역사 같은 것도 나는 모르지만(역시나 대충 알지만), 지금 당장 결정을 내리지 않는 것도 나는 좋을 껏 같아. 절대로 기분 나쁘라고 하는 말은 아냐. 신중했으면 좋겠다 싶어서 또는 내가 너를 많이 좋아하니까 하는 말인데... 음... 그러니까, 양다리 강추!" 서른을 넘긴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또는 민망할 정도로 나는 깜찍한 표정을 지었다. 힘껏 보조개를 드러내고 두 손가락을 펴 V자를 그려 네 눈 앞에 내밀었다. 너의 그 무엇이 혹은 나의 그 어떤 것이 나로 하여금 그토록 심플한, 심지어 뻔뻔할 정도로 심플한 대답을 하게 했을까. 그 쌍방간의 호환작용은 무엇이었을까. 그 시원은 어디에서 찾아봐야 할까. 너를 처음 만난 그날을 떠 올린다. 투피스 정장과 앙증맞은 핸드백으로 무장하고 위아래 올 블랙으로 대기 중인 내 앞에 나타난 너. 역시나 올블랙으로 차려 입은 너와 나의 깔 맞춤은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라는 초코파이 정신으로 그 시작을 장식했었다. 의상과 대조적이여서 더욱이 흰 네 얼굴, 선명히 붉은 네 입술과 그 입술이 그려내는 선연한 미소에 나는 도리없이 웃었다. TGIF(Thank God It' Friday)의 은총을 하사 받은 수 많은 인파들 중에 너는 홀로 단연코 빛나고 있었다. 첫 대면의 블랙이 핑크로 변이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을 필요치 않았다. 빛은 어둠 속에서 제 가치를 더욱 드러내고 있음을 알려주듯, 늦어가는 시간 속에서 돌올하게 빛을 발하고 있는 핑크색 간판. 늦은 밤 골목 골목을 방황하며 지역의 평화와 불합리하고 불균등한 자본주의의 원칙에 불만을 품은 거친 청춘들로부터 안전하게 젊은 연인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지닌 모텔 핑크장. 그 존재의 취지에 부합하여 핑크빛 조명 아래에서 보낸 너와 나의 빛크빛 시간. 그러니까 그날은...
다동
2011-11-15 0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