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멸과 자천
엊그제 치악산 정상, 자투리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쉬는 날이 없다.
주5일 근무니 국경일 연휴니 하는 것은 시대의 천업인
영세학원장으로 연명하는 내게 그저 먼 나라 얘기일 뿐.
쉬지 않고 일한다고 돈꿰미가 쏟아지는 것도 아니다.
매달 빠듯하게 경비를 맞추는 게 여간 고단치 않다.
언젠가 덕헌 님이 얘기한 자영업자의 우울한 초상이 바로 어제의 나다.
때로 내가 처한 현실의 황무함에 어깨가 처진다.
타고나지 않은 돈복이야 그렇다 쳐도 무엇보다
사교육자를 바라보는 냉연한 시선에 살맛을 잃는다.
허나 풀죽어 살던 내가 마음을 달리 먹게 된 계기가 있다.
책벌레로 살아가는 나는 구원의 빛도 책에서 찾기 마련인데
옛글을 읽다가 앞으로 내가 살아갈 방도를 얻었다.
『설원』과 『공자세가』에 이런 얘기가 전한다.
공자가 조카인 공멸에게 벼슬살이를 통해 얻은 것과 잃은 것을 물었다.
공멸이 말하기를 얻은 것은 없고 잃은 것만 세 가지인데
첫째는 일이 너무 많아 배운 것을 실행하기 어려운 것이요,
둘째는 적은 녹봉을 친척들과 나누기 어려워 사이가 멀어진 것이고,
셋째는 공무에 바빠 친구들과 교유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조카의 답변에 실망한 공자가 제자 자천에게 같은 질문을 하니 자천이 답했다.
저는 벼슬하면서 잃은 것은 없고 얻은 것만 세 가지인데
첫째는 벼슬을 하면서 배운 것을 실행할 수 있어 배운 것이 더욱 분명해지고,
둘째는 적은 녹봉이나마 친척들과 함께 나누니 골육의 정리가 더욱 두터워졌으며,
셋째는 바쁜 시간을 쪼개 친구들을 만나니 붕우의 정이 더욱 돈독해진 것입니다.
공자가 듣고 자천의 덕 있음을 크게 칭찬하였다.
그래, 공멸처럼 어리석게 살지 말고 자천처럼 슬기롭게 살아보자.
학원을 같이하는 정 선생님과 양 선생님 그리고 전에 함께 했던 조 선생님
정 선생님의 친구인 재홍 형과 함께 수요회를 만들었다.
시민아카데미의 자원봉사일이 겹치지 않는 수요일에 만나 산으로 향한다.
저녁에 수업이 있으니 새벽에 출발하여 번개같이 산을 오른 다음 부지런히 하산한다.
몸은 매우 고단하지만 산이 주는 위로는 언제나 육신의 피로를 덮고도 남는다.
수요회는 목요일에 만나 논어를 함께 공부하고 있다.
공야장을 읽고 있으니 내년 여름 전에는 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논어를 끝내고 나면 중용을 공부하기로 계획을 잡았다.
천학비재의 자투리가 띄엄띄엄 뜻을 풀고난 후 경문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자유로이 나눈다.
수요일엔 산에 올라 몸을 세우고 목요일엔 경서를 공부하며 뜻을 세운다.
투덜이 공멸의 삶을 버리고 지족군자 자천의 삶을 따른다.
잃은 것은 실망과 자조요 얻은 것은 기쁨과 우정이다.
혹여 나처럼 바삐 사는 레이소다 벗님네가 계시다면
그대에게도 기꺼이 자천의 삶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