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표류기.
그동안 지겹게 써왔던 한국말, 그동안 지겹게 봐왔던 한국사람 좀 안 쓰고 안 보자는 게 내 솔직한 마음이었다, 라고 말하면 "짜식 영어 꽤나 하는구나" 라는 속단을 내리는 사람들이 있고, 그 속단을 넘어 "짜식 외국물 꽤나 먹은 놈이구나" 라는 추측을 일삼는 자들도 있으며, 더러는 "짜식 외국에서 살다 온 모양이구나" 라는 결단을 내리는 사람들이 많아, 그 진상을 규명하고 실체를 조명해보자면,
전남 하고도 보성군을 지나 득량면이 나오면 그 득량면을 넘어 가야 비로서 빼꼼히 제 모습을 들어내는 예당(리) 라는 마을이 나오는 데, 그 조잡한 사이즈와 그 조잡한 사이즈를 소박하게 채우고 있는 인구수를 감안하자면 능히 촌구석이라 불러도 한 점 손색이 없는 그 동네에서, 이름난 영어학원 하나 없는... 아니, 이름 안 난 영어학원도 하나 없는... 사실 영어학원 자체가 없는... 있는 거라곤 태권도 도장과 없으면 심심할까봐 생긴 듯한 피아노 학원 하나가 전부인... 헌데도 이유와 출처를 알 길 없이 다방 하나만은 십수군 데가 되는 그 시골동네에서 자그만치 18년을 고스란히 살아냈으니, 나는 교육환경이 열악한 시골의 예당초등학교에 입학, 예당초등학교 옆에 있는 예당중학교에 다시 입학, 예당초등학교 옆 옆에 있는 그러니까 예당중학교 옆에 있는 예당고등학교에 역시 입학, 언필칭 그러니까 말하자니 어쩔 수 없는 삼류고등학교를 삼류의 성적으로 졸업하였으며 초지를 일관하는 자세로 말미암아 언필칭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니 어쩔 수 없는 지방의 삼류대학에 입학하였으나 매우 우스운 성적에 힘입어 그마져도 자의와 무관하게 잘려지고 말았었음 인지라,
내가 고단백 저칼로리스러운 영어회화를 맛깔나게 구사하는 일이란, 동물원의 원숭이가 긴 바나나 옆에 끼고 달밤에 혼자 앉아 사서삼경을 독파하는 일이나 진배 없다, 라는 게 내 주장이고 엄혹한 현실이다. 폐일언, 나 영어 못 한다.
뚜렷한 문법체계를 토대로 반듯하게 일궈진 영어회화?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다. 우리가 한국말을 못해서 한국여자에게 찝쩍데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전후좌우를 가리지 않코 추근덕 델 수 있는 두둑한 배짱 그리고 반드시 꼬시겠다, 는 불같은 열정. 그거면 된다. 그게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