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사과
내가 여남은 살 먹었을 무렵 한겨울의 이야기다.
아버지가 어디선가 사과를 두 포대나 얻어왔다.
70년대 말, 과일이 그 얼마나 귀한 때던가.
푸성귀 하나 없는 삼동에 어린 자식들 입에 단물 든 과물을 넣어주려는
가난한 아비의 마음을 떠올릴 때마다 눈두덩이 뜨거워진다.
삼 남매가 환호성을 지르며 포대를 여니 한 상자는 깨끔하고 멀끔한 녀석들인데
다른 포대에는 여기저기 얼고 멍들어 거무죽죽하게 제 빛깔을 잃은 녀석들이 한가득이다.
그 겨울이 다 가도록 우리 삼남매는 생채기 하나 없는 깨끔한 사과를 먹었고
아버지는 언 사과가 더 달다며 멍든 사과를 맛나게도 잡수셨다.
쉰여덟을 일기로 우리 곁을 떠나기까지 아버지의 입에서 맛없다는 소리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찬이 있든 없든 찬밥이든 더운 밥이든 옆에 있는 사람이 군침을 넘길 만큼 어느 것이나 복스럽게 드셨다.
입이 짧아 유독 가리는 것이 많았던 나는 그런 아버지를 저렴한 입맛의 소유자라며 비아냥거리곤 했다.
그런데 아비가 되어서야 아비의 마음을 안다 했던가.
아버지 없는 세상에 철부지 아비가 되어 어린 자식 키우며 살다보니
그 옛날 언 사과를 잡숫던 아버지의 마음이 절로 헤아려진다.
그립고도 그리운 내 아버지,
지금 당신 계신 그곳에선 멍든 사과 언 사과 아닌 깨끔하고 단 사과 잡숫고 계시는지요?
2005. 8. 일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