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나
트위터 아포리즘(?)에 길든 분들은 부디 일독을 자제하시라.
별것도 아닌 것이 내용만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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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읽은 책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시원찮은 기억 용량에 포맷조차 수시로 이뤄지는 모자란 인간의
부실한 기억이니 스토리의 적확성은 따지지 마시길 바란다.
어떤 학자가 사막에 사는 샤먼을 찾아갔다.
샤먼은 부족의 역사와 문화를 구송하는 존재이니 이 사람을
붙잡고 늘어지면 논문 서너 편은 너끈하리란 약빠른 계산도 있었으리라.
학자는 샤먼 앞에 넙죽 절하며 자신을 제자로 삼아줄 것을 간청했다.
샤먼은 어렵잖은 일이라며 흔쾌히 승낙을 하고는 다만 자신의 제자가
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작은 통과의례가 있음을 일렀다.
"너는 내일 새벽 해가 뜨기 전 사막에 나가 잡초 하나를 찾아라.
그리고 해 질 녘까지 그 앞에 앉아 이리 말하려므나.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학자는 스승이 이른 대로 다음 날 새벽 사막에 나가 잡초 하나를 발견하고 그 앞에 퍼더앉았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
해가 중천에 솟자 사막은 말할 수 없는 열기로 달아올랐다.
그는 밀려오는 허기와 참을 수 없는 갈증으로 고통스러웠지만
머잖은 미래의 찬란한 영광을 위해 그 모든 것을 의연히 참아내었다.
이윽고 해가 사막의 먼 지평선으로 떨어지려 할 순간이었다.
스승과 약속한 시간이 이제 눈앞에 다가온 것이다.
그때였다.
그가 하루 종일 기계음처럼 되풀이하던 그 말이 혀와 입술이 아닌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천천히 울려나오고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나는 정말 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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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둔한 인간이 책에 코박고 수십 년을 살았다.
동서와 고금을 종횡하며 아귀마냥 지식을 탐하던 그는
언젠가는 내가 읽은 그 모든 책들이 지식의 거탑을 이루어
자신을 높디높은 세계로 인도하는 구원의 길이 될 거라 믿었다.
허나 불혹의 고개를 넘어 지명을 바라보게 될 즈음,
그는 이제서야 사막의 잡초를 향한 학자의 진실한 고백과
그를 그곳으로 보낸 스승의 마음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모든 책은 결코 구원을 향한 거탑의 석재가 될 수 없다.
오히려 철저히 문드러지고 남김없이 썩어 대지에 흩어지는 순간
그것은 진정한 지혜의 싹을 밀어올리는 거름이 된다.
반평생을 아만의 더깨에 눈멀어 산 그는 이제서야 그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풀꽃만도 못하고 자갈만도 못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것도 아닌 내가 진짜 나라는 걸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