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천 수도국산 #2 인천 동구 송현동과 송림동에 걸쳐 있는 높이 56m의 산이다. 산은 작지만, 산 주변 지역에 인천의 근대 역사적 · 문화적 유산이 많아 관광객과 현장학습을 위한 방문객이 많은 편이다 만수산(萬壽山) 또는 송림산(松林山)이 원래 이름이다. 이 주변 일대가 매립되어 바다가 땅으로 변하고 공장이 지어지고 사람들이 몰려들기 전에는 작은 언덕이고 바닷가의 조용한 소나무 숲이었다. 송림산은 산 언덕에 소나무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다. 송현(松峴), 송림(松林)동의 지명도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소나무를 베어내고 언덕에 정착하여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1908년에 이 산의 정상에 서울 노량진과 인천 송현동을 잇는 송현배수지가 완공되면서 이 곳의 이름이 수도국산이 됐다. 바다를 끼고 있는 인천은 본래 우물이 적을 뿐 아니라 수질 또한 나빠서 개항 이후 증가한 인구와 선박으로 물 확보가 큰 고민이었다. 그래서 일제 통감부의 강압에 의해 1906년에 탁지부에 수도국을 신설하고 인천과 노량진을 잇는 상수도 공사에 착수하였다. 수도국산의 '수도국'은 과거에 상수도를 관리하던 수도국을 뜻하는 말로, 산의 정상에 수도시설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인천 최초의 상수도시설이자 도시계획시설로, 2003년 10월 27일에 인천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23호로 지정됐다. 수도국산 주변은 인천 구도심의 변두리로 소득 수준이 가장 낮았던 대표적 빈민가였다. 일제 강점기의 한국인들은 일본인들에게 상권을 박탈당하고 중국인들에게는 일자리를 잃고 송현동, 송림동과 같은 산비탈 마을로 찾아들었다. 비탈진 소나무숲은 가난한 사람들의 보금자리로 변모하였다 이어 한국전쟁으로 고향을 잃은 피난민들이 대거 몰려들었으며, 1960,70년대에는 산업화와 함께 충청, 호남 출신의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모여들었다. 산꼭대기까지 점차 작은 판자집들이 들어차면서 이 산의 비탈에 약 3천여 가구가 거주하게 되었다. 수도국산은 인천의 전형적인 달동네가 됐다. 달동네는 1990년대 중반부터 송현동 · 송림동 일대가 개발되면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2000년대에 와서 달동네는 대부분이 사라지고 대형아파트와 녹지, 공원으로 조성되었고 일부 작은 면적의 옛집들만이 남았다
사랑꿈별
2011-07-22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