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표류기. # 2. 안주나의 크리스마스. 여기가 아닌 어딘가로. 때론 낯 모르는 만만한 뒷통수 후려 처 가며, 또 어떤 날엔 온전히 믿었던 도끼에 오지게 발등 찍혀가며 우리는 익히고 때때로 배웠다. 봄 한철 길가를 거닐던 개구리 한 마리가 죽어도 장난삼아 돌 던진 아이 하나는 나와야 하는 법. "혹시"와 "역시", "설마"와 "웬지"의 사이를 아슬아슬 외줄타기 해가며 깨우친 경험의 산물. 원인없는 결과란 없다. 인간사 인과론에서 예외없고 얄짤없다는 사실. 허니 백면서생 또는 히키코모리와 흡사한 인간 하나가 돌연 500을 땡겨서 조촐한 짐 싸들고 삼만 오천피트 상공을 가르며 일만 킬로미터를 날라간 데에는, 단지 정신나간 놈이라서? 류의 어정쩡한 추측이 아닌 뭔가 명백한 원인이 있게 마련. 그랬다. 그 풀지 못한 공안(公案), 풀어내야 할 화두(話頭) 하나를 가슴 속 깊숙한 서랍에 짱 박아두고 나는 인도로 향했다. 이착륙을 번복하던 비행기는 14시간 30분 이라는, 일평생 격어 본 적이 없는 진득하고 침착한 비행 끝에 뭄바이에 안착하였고(아, 그날의 충격이란. 후에 풀어 쓰겠음), 그리고 다시, 12시간을 약속한 야밤 버스를 타고 17시간에 맞춰 반드시 가고자 했던 고아 주(州)에 도달했다. 그야말로 구절양장(九折羊腸)의 고갯길을 허위허위 돌아. 전 세계 히피들의 지상 낙원이라는 고아에서 'Kiss me quick' 의 해변 안주나를 일 빠따로 지명한 데에는, 29개의 분분한 해변 중 수질(?)이 가장 빼어나다는 풍문 때문(확인한 바 사실에 가까웠던). 한국식 속어의 의미를 적용시키자면 몹시 성(性)스럽고 매우 색(色)스럽게느껴지던 이름, 안주나 해변으로 향하는 길. 시원스런 풍경, 달큼한 바람 맞으며 존재 가능한 가장 아름다운 석양을 지녔다는 아라비아 해에 대한 기대를 최고치로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아, 해 떨어진다. 핏빛 해 떨어진다. 그런 인간들 꼭 있다. 제 가슴 쫙 펴내지 못하는, 본디 생겨먹은 마음 씀씀이 쪼짠하며 또한 찌질한. 당최 개척정신이라곤 눈씻고 찾아봐도, 개미 콧구녕의 코딱지 만치도 없는, 그야말로 남이 차린 밥상에 숟가락 하나만 첨부하려는 후안무치, 불학무식, 파렴치한인 족속들. '사내다움' 이라는 단어를 진즉에 용도폐기시킨 막장의 쫌팽이들. 지구 상에 없어도 좋을 그러한 인간들이 비단, 대한민국 남한 땅에만 소속된 것이 아니라, 세계만방에서 두루두루 그 돼먹잖음을 드 높이고 있다면 이것, 대한 여성들의 입장에서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아님, 범 지구적 차원에서 불행의 연속이라고 해야 하나. 하여간, 그러한 인간 하나를 안주나 해변 크리스 마스에 만났다. 하여 한판 했다. 수치화가 불가능 할 정도로 많은 양의 깽판과 꼬장을 일삼았던 나 였으니, 여행에 나선 곳에선 부디 그러지 말자 다짐하였으나 부득불의 사태를 맞이 할 수 밖에 없었음에는 반드시 필연적으로 해석이 가능한 연유가 있었다. 때는 크리스마스요, 곳은 미녀 지천의 안주나 해변이었으니, 그 사태의 진원은 어렵지 않게 추측이 가능할 터. 설마 담배파는 동네 할아버지는 아닐테다. 나는 그날 두 미녀를 만났고, 그 두 미녀의 국적은 일본, 이름은 메이, 그리고 카쥬나 이다. 이에 합당한 내러티브 쭉 이어진다. 밤 사이의 정적 속에서 유독 제 가치를 발하는 파도 소리는 아침으로 이어지고, 이국 타향의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이 여명과 그림자의 공간사이를 가르는 소리에 스스르 잠에서 깨었다면 그림이겠것만, 나를 깨운 것은 전 날의 종횡무진 들이부은 음주가무의 여파로 인한 타는 목마름, 그것이었다. 일어나기가 무섭게 미네날 워터 원샷 때리고, 바닥을 내 뒹구는 김 빠진 콜라까지 들이키고 나니, 아 좀 살겠다. 담배 하나 테워 물며 곱씹는 어제. 아, 너무 달렸다. 어제도 그제처럼 또는 그그제처럼 물론 그그그제와 일맥상통하게, 초지일관의 자세로다가. 이 무슨, 엄마가 보고플 때마다 달린다는 '하늬'도 아닌 내가, 오보 이상 탑승의 자세를 지닌 서영진 씨가 말이다. 불사의 생명력을 지닌 것들 앞에 서면 인간은 초라해진다. 허니 과음은 취사선택이 아닌 예의수순. 그랬다. 그 장대한 바다를 앞에 두고 낮부터 마신 술은 석양에 이르러 정점을 맞았다. 아, 그 장중한 일몰을 나는 뭐라고 해야 하나, 그에 적합한 수사를 필설로 풀어내는 영역는 내 바깥에 있었을 터, 몸이 전율했다. 그래서 였을까.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온 진(Gin), 그 팔등신의 미녀 또한 들이키는 술의 양이 적지 않았다. 바다를 마주보며 앉은 나와 내 앞을 장식하며 길게 누운(178cm 이니 정말 길다) 진은 자주 잔을 부딧쳤고, 제 할 일은 그것 뿐이라는 듯 킹 피셔를 들이켯다. 그 몽롱한 취중에 들이치는 핏빛 석양을 바라보자니, 30년을 관통하는 내 청춘, 그 생애 한 단락이 흔쾌히 제 한몸 바다로 투신하는 듯한 환시, 그 태양의 추락이 바다가 아닌 길게 누운 진의 배꼽으로 내리 꽃는 환상에 젖었다. 오래도록 취했다. 그토록 황홀하게. 나를 태워주렴, 미녀야. 인도에서 여섯 번 째 날, 안주나에서 세번 째 아침이 밝았다. 그야말로 주야장천 만취일색의 나날. 재론의 여지없이 즐거웠던 며칠의 여파와 흔적은 마음을 넘어 몸에 까지 고스란 했다. 그래, 내일 즘은 떠나도 옳타는 생각, 다른 곳을 꿈꾸기에 알맞은 타이밍이다. 허면 오늘이 마지막 날인데, 무얼 하고 보내야 가장 효과적인 하루가 될까, 에 대해 자못 진지하고 진중하게 까지는 아니고 그냥 대충 생각해보며 산책길에 나서기로 작심, 제량 껏 몸을 정돈했다. 제 아무리 마음 가볍게 둔다 한들 나에게 예정 된 일이란 알 수 없는 노릇 아닌가. 참 선수의 진 면목은 예고된 스테이지에서 노니는 한판이 아니라, 예상이 불가한 지점에서 들이치는 돌발의 순간에서 발휘 되는 것. 꺌끔한 면도 후 스킨. 그 스킨은 얼굴은 물론 옷에도 곳곳에 처 발랐다. 몇번의 질퍽한 스킨쉽으로 알 수 있었던 건, 그 싸구려 스킨을 좋아하는 백인 여아들이 제법 있다는 것이며, 여분의 옷이 준비되지 않았기에 그 입고 온 한벌의 옷을 나는 일주일 가까이 입고 있었기에 나름의 수단을 강구한 것이었다(땀냄새 풍기는 사내는 쪽 팔린다). 인도의 십이월은 덥다. 휘황한 호텔 숲 뒤로 펼쳐진 농경로를 걷다보니 마주하게 된 아스팔트. 길다란 길 좌우로 드 넓은 논 밭이 내 유년의 풍경마냥 목가적이다. 당최 해변을 벗어나 보질 않았으니,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나. 때 마침 나를 뒤따르는 스쿠터 한대 있어 세워 묻기로 했다. 근데 얼라리여. 여긴 어디가 좋아? 라는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목도한 그녀의 미모. 해변의 수질을 특급 상승시키는, 국가차원에서 지정보호해야 옳을 문화재 차원이였다. 묻고 답하기를 연 잊자, 어리버리 버벅데는 러시아식 영어발음 또한 일품이다(뭔들 싫겠냐만은 러시아 애들의 영어발음 섹시하다, 라는게 내 생각). 미녀앞에 서면 말이 길어지는 것은 당연지사 필수조건. "나는 한국에서 온 진(서영진의 마지막 글자를 따서 Jin)인데, 며칠 놀다가 산책길에 나섰는데,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는게 어디가 좋아?" 라고 했지만 결국 줄여 말하면, "태워 줄래?" 라는 것. 돌아오는 대답이란, "나는 어제 도착해서 술 마시고 일어나 오늘 아침이라 나도 어디가 어디인지 모르니 어디가 좋은지도 모르겠다는 것" 허면 안태워 주겠다는 말인가를 고민하다 잡담. 이름이 올가랜다. 동명의 이인 007 퀀텀 오브 솔라스에 출연했던 본드 걸, 올가 쿠릴렌코와 비견해도 그릇된 바가 없는 몸매는 당장 플레이 보이의 모델로 활동해도 합당할 정도였다. 과연 러시아란 나라, 김태히가 밭을 메고 전지현이 노점상을 한다던데, 영 근거없는 개 뻥은 아닌 모양이다. 물론 모스크바 미녀 진과 올가만 보자면 말이다. "버스타고 아무 데나 가볼 생각인데, 버스 터미널이 어디야? 멀어? 걸어서 얼마나?" 라는 제법 노골적으로 "태워줄래?"를 묻자, 아무것도 몰라요,라는 백치미 넘치는 답변의 연속이다. 이즘되면 다음을 기약하고 물러서는 것이 선수의 참된 매너. 땡큐를 외치며 가던 길 가려는데 뒤를 따르는 청아한 음성. Would you want to pick up? 하하하. 콜이지. 안주나에 도착해서 두번째 픽업이다. 첫날 가이드 북 펴가며 어리버리 이곳저곳을 헤메일 때, 이태리 밀라노 출신의 아주 패셔너블하고 매우 패셔너블한데다가 그저 패셔너블하기만 한 여자애 하나가 자신의 스쿠터로 나를 모셨다. 때에 낯모르는 처자의 허리를 감아쥐기는 무엇하여 어깨에 조심스레 손을 얹었으나, 운전하기 불편하다고 허리를 잡으로 했었으니, 그 경험을 적극활용. 주저없이 올가의 허리를 감싸쥐자, 그녀 매끄럽게 출발한다. 아름다운 사고방식이다. 나 이런거 좋타. 이 얼마나 개방적이고 진취적이며, 사람에 대한 어떠한 편견과 오만을 지니지 않은 오픈 마인드 인가. 인간이 인간에 대해 품는 이러한 예의와 믿음이야 말로 요원하게 느껴지던 지구평화를 가시적 현실화하는 최고의 수단으로 작용할 것이라 나 믿는다. 동일한 조건이 서로 다른 상황 하에선 판이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는 것, 그 예를 필요치 않을 만치 명백한 사실이다. 첫 픽업의 경우, 이국의 꽃과 바람에 더불어 생경한 사람들과의 조우를 통해 문득 자연과 인간이라는 거대담론을 떠올리다 돌연 깨달음의 경지에 안착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기회를 앗아갔다면, 후자는 길을 걷다 지친 나머지 아이스 크림 가계에 들렀다가 강도를 맞고 상해를 입은 끝에 어렵사리 고국으로 귀환해야 할지도 모를 안타깝고 아픈 상황을 미연에 방지한 것 일수도 있다. 허니 "이쁘다 안 이쁘다" 의 이분법을 통한 간명하고 명쾌한 분석을 일 삼는 자들이 있다면 오해 접으시라. 여하간 원수는 갚으라고 있는 것이지 용서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던 평소 신념의 연장선상에서, 그녀가 빚어준 은혜를 모른 체 할 수는 없다. 것은 인간에 대한 인간의 예의에도 어긋나며, 사나이의 행동방식과 윤리강녕에는 더더욱 비껴나가는 일 일테다. 마음이 복잡할 수록 단순하게 풀어내야 하는 법. 이럴 땐 거두절미. 차나 한잔. 문제적 까페, 오아시스로 들어서다. 돌아서는 뒷 모습 바라보자니, 씁쓸한 마음이 담배하나 테워문다. 다만 위안이라면, 쉬이 거절 못하고 쩔쩔메는 모습. 약속에 늦었다는 핑계, 내가 미안해 니가 미안해를 반복하던 배려, 헛될 망정 다시 만나면 그땐 맥주를 마시자는 약속이 그것이었다. 자갈 밭에서 자갈 줍는 일이 뭐 어려우랴, 라는 말도 안되는 희망으로 돋아나는 아쉬움을 토닥여 두드렸지만, 올가의 미모가 자갈도 아닌 이상.... 쩝. 다시금 할 일이 없어진 나. 떠나지 않는 미련은 스쿠터를 랜트하기로 마음 먹었다. 저녁 6시를 마감으로 랜탈료 200루피의 계산을 마치고 바로 옆에 위치한 구멍가계에서 70루피 짜리 기름을 넣는데, 기껏 서 너살이나 되었을까, 휴발유가 담겨진 펫트 병을 들고 오는 여자 아이의 모습이 너무나 예쁘다. 게다가 "메리 크리스마스"를 말하는 발음이란. 그러고 보니, 그랬다. 그날은 크리스마스였다. 어젯 밤 크리스마스 파티를 그토록 질퍽하게 즐기고도 잊어야 했던 것은, 아마 30도를 육박하는 찌는 날씨가 주는 그 생겸함이었을 테다. 혹한의 강추위 속에 펄펄 내리는 눈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100루피를 건네주고 받은 30루피의 잔돈을 아이에게 건네며 크리스마스 선물이라 하자, 그 푼돈에 비교해 300배를 호가하는 순도 100프로의 웃음을 지어준다. 게다가 볼에 입을 맞춰주는 메너라니. 적지않은 감동이었다. 그때 부터 였을께다. 경쾌하게 바람가르며 느긋하게 거리 구석구석을 싸 돌아다니기를 두어시간. 무신론자의 입장에서라기 보다 잦은 횟수를 솔로로 보내야 했던 만치, 부정적 입장을 취했던 성탄이 심각하게 행복해졌다. 나중에는 목이 칼칼해짐을 넘어 쉬려할 지경에 까지 나는 메리 크리스마스!! 를 외쳤다. 때에 리바이벌 되는 환대와 호응. 지난 밤 술병에 약이라도 탄 것일까. 섹스 없이도 오르가즘이 왔다. 쿤테라 식으로 정의하자면, 내가 살아내야 할 리얼리티란 지겹도록 머물렀던 그곳이 아닌 다른 곳에 정말 존재 했는지도 모른다는 착각에 눈물겨워하는 사이, 그 눈물겨움과 무관하게 장난스런 허기가 나를 조른다. 뭐 좀 먹자고. 목이 탄다고. 스쿠터 투어를 즐기는 사이, 굳이 해변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거리 곳곳, 미네랄 워터급의 수질을 자랑하는 까페들 제법 목도한 바. 이름 좋타 싶은 '오아시스' 그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의 대미를 장식했던 문제적 미녀, 메이와 카쥬나를 만났다.(계속)
다동
2011-05-23 22: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