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지지자
무림-학림
CA
CDR-NDR-PDR
NL-PD
위에 적힌 용어들이 함의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아는 이라면
청춘의 시절, 그대는 틀림없는 '빨갱이'였다.
오늘의 그대가 어디선가 돈을 버는 기계요 근근한 생활자로 남루한 삶을 깁고 있을지 모르지만
피가 끓던 그때의 당신은 이상과 혁명을 꿈꾸며 테제를 학습하던 우국의 지사가 아니었던가.
허나 혁명의 열정은 빨리 끓는 만큼 쉬이 식고 어느덧 당신은 일용할 양식에 목이 매였다.
약빠른 동지 몇몇은 과거의 이력을 훈장처럼 달고 기꺼이 '적'에게 투항했고,
그네들은 모반의 인간들이 언제나 그러하듯 자신이 그렇게도 혐오했던 가치를 결사 옹위하는
수구의 수문장이 되어 황금 갑주를 두른 채 녹슨 창칼을 휘둘러대고 있다.
간데없는 동지의 변신에 환멸을 느끼는 한편 먹물 전위들이 꾸려가는 진보진영의
해묵은 분파주의에 넌더리가 날 즈음 당신은 노무현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알게 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노무현 지지자라는 것은 암만 해도 '가오' 죽는 일이다.
이념적 선도성이나 당파성, 혁명적 전위로서의 자부심 같은 건 애초에 없다.
노무현에게 '뽀대'나고 '가오'사는 반짝이는 완장 따위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면 쥐뿔도 없는 노무현이 많은 이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측은지심이다.
이 땅에서 상것으로 살아가는 씨알에 대한 연민, 거기서 우러나는 정직한 분노.
그리고 그것을 위해 자기가 지닌 모든 것을 기꺼이 내던질 줄 아는 장부의 용기.
그의 말은 그리고 그의 삶은 그러한 그의 거짓 없는 마음을 담고 있었다.
그래서 당신은 B급 좌파 근처에도 못 가는 노무현 지지자가 되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노무현은 결국 실패했다.
다른 곳과 달리 대통령의 자리에서 그는 어쩔 수 없는 초보자였고
수시로 좌회전 우회전의 깜박이를 섞바꾸면서 뒤따르는 많은 이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허나 정치적 행로에서 직진만이 가능한 자 누가 있으랴.
그의 좌충과 우돌은 민주주의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그 나름의
치열했던 분투와 모색의 과정이라고 당신은 믿고 있을 것이다.
죽어 얻은 열렬한 지지를 생전에는 결코 받지 못했고
죽어 이룩한 통합의 상징성 또한 생전에는 그의 몫이 아니었다.
오늘 그의 가치를 잇겠다고 자임하는 이들은 여럿이나
당신의 눈에는 그들이 관장사로 재미 좀 보려는 장사치로 보일 지도 모른다.
이 난만한 오월의 봄,
정치적 지향과 가치의 구심을 잃은 당신, 당신은 노무현 지지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