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표류기. #1. 프롤로그. 단언컨데, 여행은 일상보다 비교우위, 가치우선의 항목으로 존재한다. 왜냐? 무슨 근거로 그 따위 소리를 짖껄이느냐?? 라고 묻는다면, 글쎄 올씨다. 차차 생각나는데로 끼워 맞춰보기로 하고, 여하튼 에니웨이 좌우지간에 지금의 나, 인도를 떠올린다. 쫒고 쫒기는 속도전, 치고 받는 공방전, 속고 속이는 복마전의 세상을 잊고, 마음의 행복 그 느림의 미학을 찾아 떠난다는 인디아.그 땅에 나도 갔다. 'One fine day in Praha'의 저자 절친 문모양의, 개나 소나 심지어 기린까지 가는 거길 왜 하필 너까지, 라는 핀잔을 뒤로하고. 대한민국 남한에서 수만 킬로 상공을 넘어서 위치한 땅 인도, 계중 지상 가장 아름다운 석양을 지녔다는 서남부의 해변에서 한달을 보냈다. 아니, 살았다. 과거에서 치솟는 열패감에서 자유로운체 미래에 드리워진 불안을 쉬이 쌩까버린체, 현재 진행형의 의미로다가 온전한 삶을 나는 살았다. 돌아온 지금, 모든 것이 그립다. 핏빛의 석양은 물론이거니와 숨쉬던 공기와 기기묘묘한 향취, 왁자한 사람이사의 소음, 심지어 시때를 불문하고 들이 붙던 내장활동의 무한폭격마져도. 이물스럽고 생경한 환경과 풍광은 얄팍하고 가난한 지식을 흔쾌히 전복시켰고, 처음 만나놓코 매일 만난 사이처럼 대하는, 그 출처와 연유가 불분명한 사람들의 친절함에 빈한한 이 가슴 양껏 부풀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처한 지랄맞은 현실과 나아지기 어려운 미래에도 불구, 24K 순도 백프로의 웃음을 연잇는 그들사이에서 나 역시 족히 두어개즘은 나사가 풀린 인간마냥 연일 쪼개고 다녔다. 어떠한 세월을 담보로 해서라도 반드시 거슬러 올라가야 할 생의 분명한 지점으로 남은 인도. 그에 대한 그리움이 내 곁에서 떠나지 않는 한, 지속가능한 열망으로 남는 한, 나는 다시 꿈꾸고 말 일이다. 설령 현실에 결박당한 꿈이 불행을 자초한다 할 지언정, 미지없는 삶이란 사이다 없이 먹는 달걀처럼 퍽퍽하기 그지 없을 것, 명징하다. 너나 없이 뚤린 입, 저 마다 달린 손가락으로 찍어내는 의미불발의 여행기 난무하는 인터넷 세상에서, 무엇에도 득될 껏 없고, 영양가라곤 쥐뿔도 없는 졸문하나를 보탤까 싶은 근거충만한 이유를 핑계로 하여 불 보듯 뻔한 여행기는 초장에 작파하고, 예상할 수 없는 어느 훗날에 나름의 근사한 문장을 입힐 수 있는 순간을 위한 밑그림을 그리는 일 따위와 무관하게, 연사없는 판에 광이나 파는 것처럼 하릴없는 차에 즐기는 백일몽, 노느니 염불한다는 말처럼 심심파적으로다가, 그간을 떠올리는 잡상과 단상을 시간의 순서를 마음 껏 배반하며 생각나는데로 지껄일 예정이다. 없는 살림에도 불구, 화장실 겸용이 아닌 독립된 공간으로서 제 역활을 하는 암실을 지니고 있는 나. 제법의 파격을 등에 지고 평이한 사진 투성의 평단에서 나름의 주목을 받고 싶었으리만치, 나름 진지한 태도로 사진에 임해보고 싶었던 세월을 화석으로 묻어두고 지냈었다. 아시는 분 다 아시는 사진가들의 천국 인도. 천상의 눈망울을 닮은 아이들, 염화미소의 현현들이 곳곳에 넘치고, 맥없이 무담시 먼 산 바라보는 소들의 자태마져도 피안의 풍모와 닮아있음을 추측게 해준다는, 노소를 불문하고 카메라 렌즈 들여다보기를 좋아하는 그곳에서, 나 진짜로 사진한번 힘차게 시작해보련다,라는 절치부심!! 없었다. 사실 그 밥에 그 나물들인 인도사진의 상투성을 뛰어넘을 만한 실력이 내겐 없을 뿐더러, 그 유사품을 찍으려 발품을 팔고 다니느니, 사각의 형태가 아닌 불규정의 형체로 기억 될 가슴 속에 담아내는 일에 애시당초 열중하기로 마음 먹었었다(한마디로 실컷 놀자는). 공중부양을 배우러 가는 것도 아니니, 가벼운 마음을 여행의 최우선으로 삼자던 결의처럼, 여느 여행자들의 제 몸뚱이 만한 베낭에 터무니없이 못 미치는 30X50cm의 크로스 백 하나를 다소곳이 걸쳤고(하니, 난 배낭여행족이 아니다), 그안에 자리하기에 어울릴, 자이즈 이콘 자그마한 바디와 겸손한 사이즈의 15미리 렌즈 하나가 애초의 마음이었다. 허나 그 당초의 마음에 12만원짜리 컴팩트 디카 하나가 보태진 것은 참말로다가 다행인 일이었다. 들이 붇고 마시는 일들의 연속에서 소신 껏 봉양하지 못한 탓으로 RF는 여행의 삼분지 일 지점에서 박살, 필름 열통을 넘기지 못하고 아사햇다. 게다가 남겨진 컴팩트 디카 마져도 온전치 못한 상태로 네손 내손에 관여치 않코 여기 저길 마구 떠돌았으니, 그 사진에 기교나 기술따위가 있을리 만무하다. 그저 기록용으로 추억용으로 즐기기에 무방한 정도라면 옳을게다. 허나, 미리 밝힘으로 필히 약속드려야 할 필사즉생의 각오 하나. 아름다움에 대하여 분명코 단언코 유장하고 명징하게 아름답다 말해줘야 한다는 강박, 아름다움에 대한 필살의 예의는 백번의 감탄이 아니라 몸소 움직여 전하는 필살의 찝쩍임이어야 한다는 신념을 지닌 나. 이를 적극 활용하여 각국 각색의 미녀들과 함께 마감된 사진들이 줄을 이을 껏은 묻지 않아도 예측이 가능한 사실 일터. 때엔 삼가 설레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감상하길 바란다. 들뢰즈의 노마디즘을 들 먹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생활이라는 이름의 드 넓은 감옥에서 방랑이라는 모반과 반역을 꿈꾸지 않는 자 몇이나 있을까. 그 열망에 대한 농도와 밀도만이 높고 낮음으로 산재 할뿐. 그 존재 자체를 부인할 수는 없을 일이다. 결국 생의 행불행을 결정짓는 요소중 가장 중요한 하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일 것이다. 지금에 이르러 막 살수 있는 용기 하나를 더 지니게 된 나. 다시 떠나고 그 앞에 드리워진 미지를 두려움없이 끌어안을 일이다. 삼월엔 인도차이나 중 어느 한 군데에 다녀올 예정이다. 언제나 처럼 일은 많코, 시간은 없으며 돈은 더욱 없다. 허나 마음이 넘쳐나니 이에 '노 프라블럼'. 강도 절도등을 제외한 어떠한 수단을 거치더라도, 빗 독촉에 쌍욕을 듣는 결과를 낳더라도, 나 다시 월경이다(생리 말고). 허니, 글을 읽는, 나를 아는, 내 빈곤을 목도한 친구들이 일간 전화드릴테니, 긴장하고 대기 하시라. 정리한다. 반복과 순한의 벗어날 수 없는 경계선상에서의 일상. 그 일상의 짐을 잠시 잠깐이라도 벗겨줄 여행. 굳이 희소하기에 값어치 맥여지는 진부함은 차치하고라도, 다름의 생활속에 자기 자신과 가장 유사한 타인 또는 동안의 자신과 가장 판이한 자신으로써,삶을 살아가 보는 일. 그렇듯 또 다른 내가 되어보는 삶의 체험 현장. 그것이 여행이 제공해주는 우위적 일상이 아닐까. 글을 마무리 함에 위의 사진을 기초하여 근거없는 사족 하나 보태보자면, 여행자라는 동일한 꼬리표 만으로 쉽사리 친구가 되고, 행선지가 같다는 이유만으로 길의 동무가 되는 힘 또한 여행의 분명한 묘미 일테다, 라는 우격다짐.
다동
2011-05-17 2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