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이 사냥꾼
모든 밥에는 낚싯바늘이 들어있다.
밥을 삼킬 때 우리는 낚싯바늘을 함께 삼킨다.
그래서 아가미가 꿰어져서 밥 쪽으로 끌려간다.
저쪽 물가에 낚싯대를 들고 앉아서 나를 건져올리는 자는 대체 누구인가.
그 자가 바로 나다. 이러니 빼도 박도 못하고 오도가도 못한다.
밥 쪽으로 끌려가야만 또 다시 밥을 벌 수 있다. -김훈, <밥벌이의 지겨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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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수다>에 출연한 임재범의 생활고를 들으며 김훈의 글을 떠올렸다.
고백하건대 사실 나는 김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당대 최고의 작가로 상찬 받는 이를 무명의 촌부에 지나지 않는 내가
불호를 이야기하는 것이 남보기에 우습겠지만 여하튼 그는 내 스타일이 아니다.
그의 작품마다 넘쳐나는 비장미와 그의 글에 일관하는 수컷스러움을
대할 때면 왠지 모르게 낯이 화끈거린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정치(精緻)하고 간결한 그의 문장에 때로 숨이 막힌다.
많은 이들에게 숨막히는 감동으로 다가든 그의 글에서 나는 질식을 느끼는 때가 많다.
(솔직히 이건 천재에 대한 범부의 질시일 수 있겠다)
하여 나는 견결한 주인공들이 펼쳐보이는 장엄의 비극이 아닌,
조금은 어수룩하고 데데한 인간이 엮어가는 희극을 사랑한다.
이문구나 윤흥길, 방영웅과 한창훈이 그려낸 군상들이 바로 그렇다.
비극의 현실 한복판에 자리하고서도 언제나 낙천과 해학의 여유를 잃지 않는
그들의 모습은 언제 보아도 경이롭고 신비하다.
그렇지만, 살다보면 도리질하던 김훈의 글이 가슴을 치며 다가오는 순간이 있다.
임재범의 노래가 시작되기 전에 삽입된 곡절의 인터뷰를 보게 되는 것과 같은 때 말이다.
고해(苦海)같은 세상에서 핍진(乏盡)한 삶을 꾸리며 아내와 아이에게 부끄러운 사람일 수밖에 없었던 그의 고해(告解).
이 수줍음 많은 조울의 은둔자가 한정없이 두려운 세상 밖으로 걸어나올 수밖에 없었던 연유를 말하며 회한의 눈물을 떨굴 때,
나는 이 수컷스럽기 그지 없는 가인(歌人)과 그의 노래들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사람은 언제 아름다워지는가.
자기를 없이 하는 순간 인간은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된다.
세상의 온갖 것을 버려도 결코 버릴 수 없는 것이 자기 자신이 아니던가.
그러나 생의 어느 순간 아비는 기꺼이 나 자신을 버릴 수 있게 된다.
작년 여름이었나보다.
김태원이 에버랜드에서 우세스런 요정 차림으로 요술봉을 흔드는 광경을 보았을 때,
역설적이게도 나는 가장 희극적인 그 장면에서 한 사내의 굳건하고 결연한 삶의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남자다운 진짜 수컷의 향기를 느꼈다.
가족을 위한 먹이 사냥꾼의 운명을 타고난 남편이자 아비가 보일 수 있는 최대의 용기.
때로 세상의 모멸과 비아냥조차 아랑곳하지 않을 수 있는 그것이야말로 먹이 사냥꾼이 가져야할 소중한 덕목이다.
김태원이 예능을 통해 그의 건강과 가난, 그리고 예술까지 구원받은 것처럼
임재범 역시 <나는 가수다>를 통해 조울의 자기를 구원하고 또 병든 가족을 구원하기 바란다.
이 밤 알딸딸하게 취한 세상의 곤고한 수컷들이여.
오늘도 노래방에서 암컷들의 비토를 무릅쓰고 그이의 노래를 꺽꺽이는 생목으로 열창하라.
한 사람에 너댓곡씩 무한 반복으로 허룩했던 그의 통장을 두둑히 채워주자꾸나.
마지막으로 음악이 줄 수 있는 최대의 감동을 선사한 그에게 레이소다 방간 님이 좋아하는 진정(眞情)의 인사를 건넨다.
나마스떼! 임실장.
-오이색 깔맞춤하고 오이김치 담그는 자투리와 보조 주방장 일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