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락
SS 레인 빅토리호 60주년 행사
3월의 쾌청한 하늘
푸른 바다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말끔한 모습의 증기선이 정박해 있다.
조타실 부근에 걸린 현판에
흰색으로 '레인 빅토리'란 배 이름이 선명하다.
상선이었지만 전쟁 당시 군용으로 사용됐고
이후 전쟁박물관으로 새롭게 탄생한 레인 빅토리호는
옛 모습을 거의 간직하고 있다.
선수와 선미 조타실 부근 등
곳곳에 설치된 기관총 10여 문이
배가 거쳐 온 과거를 말해 준다.
조타실과 기관실 선실 정도만 약간 손을 보았을 뿐이다.
배에 오르자 단단한 쇳덩이 갑판이 발아래 느껴진다.
61년 전 피난민들이 아우성을 치며 배에 올랐을 모습이 그려진다.
밀려오는 중공군을 피해 원산항으로 몰려 온 피난민들은
철갑 판을 밟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을 터이다.
갑판 아래층은 전쟁박물관으로 변모해 있다.
1000스퀘어피트 남짓한 크기의 박물관에는
2차 대전과 한국전쟁 베트남전쟁에 투입됐던
레인 빅토리호의 활약상을 담은 신문기사가
빛바랜 액자에 보관돼 있다.
레인 빅토리는 2차 대전 발발 이후
42명의 해군 선원이 탑승한 군수물자 수송선이었다.
무생물 대신 7009명의 피란민을 태웠던 원산 부두에서
선장은 갑판을 가득 메운 사람들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제발 무사히 이들을 부산항까지 데려갈 수 있도록 해달라며
기도를 올렸겠지,
적의 공습을 받으면 어떻게 할까?
걱정을 하면서도 애써 의연한 모습으로 파이프에 불을 댕겼을까?
원산에서 태운 피란민들은
평소 군수물자를 싣던 창고를 가득 메웠을 것이다.
배는 상선이라 정원이 없지만 7009명이 승선했으며
빈 공간이 거의 없이
다닥다닥 붙은 채 서로를 끌어안고 추위를 이겨내며
부산항까지 갔다.
전등도 창문도 없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
22시간 동안 머무는 동안
피란민들은 얼마나 추위와 공포에 떨었을까?
우리의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들은
그처럼 혹독한 어려움도 이겨낸 세대란 생각이 물결쳤다.
부산항에 도착하기 전 태어났다는 여자아이가 생각났다.
기록에 따르면 이등항해사는
갓 태어난 아기와 산모를 선실로 옮겼다고 했다.
자유와 새 생명을 한꺼번에 얻은 그 산모는
당시 어떤 기분이었을까 궁금해졌다.
1989년 퇴역한 이 상선은
현재 샌피드로 항에 정박돼 있다.
이 상선의 영웅적인 활약상을 기리고
한미 간의 우호증진을 확인하는 행사에는,
SS 레인 빅토리호 투어 외에도
한국전 참전용사들의 전쟁스토리,
한국전쟁 기록사진 전시 등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