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th dream
청주
청주시는 삼한시대에 마한의 땅이었다가 백제시대에 상당현, 일명 낭비성 또는 낭자곡이라고도 하였다.
신라시대인 685년(문무왕 5) 서원소경을 두었고 757년 서원경으로 승격하였다.
고려시대인 940년(태조 23) 청주로 지명을 고쳤고 983년(성종 2) 청주목이 된 뒤 995년에는 절도사를 두었다.
조선시대 세종은 한때 관찰사를 두었으나 세조는 진으로 격을 낮추어 도호부를 설치하였고
선조가 청주목으로 승격시켜 2군 9현을 관할하게 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를 개정하고 전국을 8도로
개편함에 따라 공주가 충청도의 수부(首府)가 되자 청주목이 폐지되고 청주군이 되었으며 이듬해에는 충청도가
남북으로 분리되어 충주에 관찰사를 두면서 청주군은 충주소속이 되었다.
1906년 관찰사를 충주에서 청주로 이전함으로써 비로소 충청북도의 주도(主都)가 되었다.
1949년 8월 15일 지방자치법에 따라 청주시로 개칭하였다
수암골의 이쁜(?) 벽화들은 옛모습을 변화시켜 새마을 구호 근면 자조 협동보다 감동이 덜하고
뒷산 우암산 삼일공원의 3.1운동 당시 33인중 충북출신 5명(손병희, 권동진, 권병덕, 신홍식, 신석구)의
동상과 무수한 시간을 버젖이 애국자의 탈을 쓰고 서있다가 민간단체의 힘으로 1996년 부수어버린
정춘수(후에 친일로 변절)를 대신한 횃불이 맘씁쓸하게 한다
몇몇의 지방 도시를 돌아보며 보았던 남문터 북문터 이런 지명을 청주에서도 발견하고 슬퍼진다
그것이 남아있다면 얼마나 즐겁게 둘러볼것인가 일제의 도시계획속에 1910년 이전 일제히 역사속으로 사라진다
동성로, 남성로, 성문안, 성문밖이란 지명으로만 흔적을 남긴채 말이다
공주와 더불어 도심안 깊숙한 곳에 절터가 있었음을 증명하는 철당간(용주사 철당간 국보 41호)이
다른 종교의 높은 신분인 나랏님도 어쩔수 없음을 증명하듯 우뚝 솓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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