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은 일의 수고로움
추석 때 처가에 갔더니 손 큰 장모께서
이것저것 수다한 먹을거리를 바리바리 싸 주셨다.
집에 돌아와 이것저것 정리하고 나니
마지막으로 남는 게 고구마 줄거리.
커다란 라면상자를 가득 채운 그것들을
내려다보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이윽고 작심한 아내가 큰 솥을 걸어
고구마 줄거리를 살짝 데치더니 함께 까잔다.
누구의 명이라고 거역할쏜가?
피같고 살같은 연휴의 마지막날.
나는 아내와 무릎을 마주하고 세 시간 넘게
고구마 줄거리를 벗겨야만 했다.
저녁 답에 아내는 들기름을 두르고 마늘을 짓찧고 소금 간을 한
보들보들한 고구마줄거리 나물을 상에 올렸다.
연휴 내내 위장을 채운 기름진 갈비나 비릿한 굴비와는 다른
담담하고 순하고 평화로운 맛이 입 안에 감돈다.
아, 내 입에 들어오는 찬거리 하나에 깃든
이 묵묵한 수고로움이여.
알량한 자본의 잣대로는 절대 평가될 수 없는
이 하찮은 일의 수고로움과 가치를
고구마줄거리 나물을 통해 깨닫는다.
2010년 9월 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