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꼬가 아파보니 알겠네 지난해 철쭉 필 무렵부터 코스모스 꽃잎이 한들거릴 때까지 난생 처음 치질이라는 것을 앓았다. 4년 전 누나가 치질로 수술을 할 때, 또 부창부수랍시고 매형이 재작년에 똑같은 수술로 엎드러질 때만 하더라도 나는 그네들의 아픔을 몰랐다. 살아오는 동안 치통도 앓아보고 두통도 겪어보고 복통도 치러봤지만 치질의 고통은 그것들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아픔을 내게 일깨웠다. 앉을 수도 설 수도 없이, 성난 똥꼬가 허리까지 뻐근하게 전해오는 통증을 온전히 받아내며 나는 그제서야 알게 된 것이 있다. 공자는 앎에 세 가지 종류가 있다고 했다. 생이지지(生而知之) 학이지지(學而知之) 곤이지지(困而知之)가 그것이다. 중니의 말처럼 우리의 삶 속에서는 나면서 아는 것이 있고 배워서 아는 것도 있으며 격심한 고통 속에서 깨닫는 것이 있는 법이다. 40년 이상을 멀쩡히 기능해 온 유순하기 이를 데 없던 내 똥꼬가 일으킨 반란은 나를 더없는 고통 속으로 밀어 넣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절실한 깨달음 또한 안겨 주었다. 돌아보니 입때까지 나는 여리디 여린 내 똥꼬를 배려한 적이 별로 없었다. 거개가 그렇듯이 나 또한 그 잘난 눈코입만 위할 줄만 알았지 충직하고 순편한 밑구멍 똥꼬를 위할 생각은 별로 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똥꼬야 어찌되든 색성향미촉(色聲香味觸)의 오근인 눈코입귀가 원하는 대로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며' 나의 일차원적 욕망에 충실했던 것이다. 42년 만에 이루어진 똥꼬의 반란으로 나는 밑구멍과 화해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빤지르하게 얼굴 다듬는 시간보다 항씨(肛氏)의 안부를 묻고 그를 돌보는 시간이 길어졌다. 음식도 눈코입이 원하는 것이 아닌 항씨가 좋아할 만한 것을 골랐다. 기니때를 지키고 과식을 피하고 야식은 끊었다. 나의 정성에 감복했는지 항씨는 여섯 달만에 노여움을 풀었다. 나는 그렇게 나의 똥꼬와 화해했고 지금껏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나는 아픈 똥꼬가 가르쳐준 이 생생하고 절실한 지혜를 다른 이들도 좀 알았으면 싶다. 그 잘난 아니 잘난 척하는 눈코입의 엘리트들이 똥구멍의 소중함을 또 무서움을 느꼈으면 싶다. 자식뻘도 안 되는 패륜의 대학생 애년놈에게 수모를 당한 경희대의 미화원 아주머니나 연세대의 경비 아저씨 같은 이들이 바로 우리의 항씨라는 것을 기억하기도 끔찍스런 용산의 철거민이 우리 사회의 성난 똥꼬라는 것을. 하여 나는 기도한다. 하느님, 잘난 사람일수록 똥꼬 한번 된통 아프게 해줍소사. 대통령, 삼부요인, 국회의원, 장차관, 재벌, 고급공무원, 장성들, 그리고 사이비 지식인과 싹수없고 본데없는 대학생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눈코입만 잘난 줄 알고 밑구멍 귀한 줄 모르는 이 분네들 똥꼬 한번 징하게 아프게 해 주셔서 그들도 저와 같은 똥꼬 사랑 절절하게 느끼게 해줍소사. 제~발!
자투리
2010-06-08 02: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