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반시(運水搬柴) 불가에서 전해오는 말에 운수반시란 게 있다. 물 길어다 밥 해 먹고 나무해서 불 땐다는 뜻이다. 범속한 이의 비루한 일상에 지나지 않을 이 말이 실은 깨달은 이의 평온한 삶을 일컫는다는 것에 불법(佛法)의 진진한 묘미가 있다. 자고로 하루 종일 가부좌 틀고 앉아 천하의 경전을 내리 왼다고 해서 깨달음이 저절로 굴러들진 않는 법이다. 어쭙잖은 화두 하나 붙들고 평생을 씨름하는 선방의 큰스님보다는 물 길어다 밥 해 먹이는 공양주 보살이 부처에 더 다가갔단 말씀이리라. 지난 해 봄부터 늦겨울까지 아내가 많이 아팠다. 그녀를 덮친 우울의 파도는 모든 가족에게 쓰나미로 다가왔다. 고치를 짓고 들어앉은 번데기마냥 옹색한 생각의 감옥 안에서 그녀가 앓고 또 앓는 동안 나와 아이들 역시 전에 없는 생의 슬픔을 곱씹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알게 되었다. 아내가 병들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운수반시의 일상이 얼마나 복된 것인가를. 그녀의 말없는 희생이, 가없는 헌신이 그것을 가능케 한 바탕이라는 것을. 버들개지에 물오르고 산수유가 노란 꽃망울을 맺을 때 쯤 아내는 우울의 고치를 찢고 밖으로 걸어 나왔다. 어질러진 살림살이를 정돈하고 켜켜이 묵은 때를 말없이 걷어냈다. 아내가 돌아오자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고 생기를 회복했다. 일주일에 두 번 아내와 집 앞의 부락산에 오른다. 저만치 씩씩하게 앞서가는 아내를 불렀다. "찬흠엄마, 같이 가요." 갈잎처럼 푸석했던 아내가 어느새 청신한 봄빛을 닮아 있다. 어여쁘고 어엿븐 당신.
자투리
2010-05-25 0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