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조사(緣起祖師)는 의상대사를 따라 당나라에 유학을 갔다고 한다.
그가 돌아온 당시에 살아생전 남긴 족적이 많으리라
하지만
시간이 남긴 유일하고 무일한 족적이 여기에 있다.
그의 이름과 탑
분명 그에게 불심을 준 것은 어머니 일개다.
당시 유학길은 떠나면 일년이 될지 십년이 될지 영영 못돌아올지 모르는 길이었으리라
연기조사는 애끓는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기억했으리라
그가 낮선 땅에서 진정한 생을 구할때 마저 오직 떨쳐버릴수 없는, 수만리 떨어져서도 함께 다은 별을 보았으리라
그가 깨달음이 높아질수록 별의 빛이 왜 변함이 없는지 알았으리라
어머니가 자식을 기리는 마음이 그러하다.
생이 눈앞에 있는데 그것을 멀리서 찾다 돌아온 연기조사가 그러하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가 그러하였듯
차(茶)씨앗만을 가져와 화엄사 뒤에 뿌린 뒤 그곳에서 자란 차를 어머니에게 올린다.
씨앗이 무엇인가
깨고 나오는 생명! 끝내는 모두 그곳으로 돌아가는 어머니라는 대지의 품에서다.
이 씨앗(種子)은 그렇게 영원한 진리에 뿌려졌다.
그에게 어머니는 부처였다.
부처는 단 한가지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자비로운 모습
이름없는 많은 예술가들이라는 영혼이 그것을 기리기 위해 그것에 조금이라도 닿기 위해 촛불을 태웠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의 업적위에 남아 있는 거다.
나는 어릴적 나의 어머니가 나를 위해 기도하던 모습을 기억한다.
이제서야 그것이 하나님을 향해서든 부처님을 향해서든 중요한 것이 아님을 안다.
그녀는 자식을 위해 모든 질문을 믿음에 구한다.
그녀는 자식을 낳으며 상상할수 없는 첫 희생을 치룬다.
남의 몸을 받아들이는 것이 운명이라면 자신의 몸에서 핏덩이를 쏟아내는 고통은 지울수 없는 숙명이다.
희생(牲)
희생은 생(生)을 구한다.
믿음을 가진 모든 중생은 희생하는 자이다.
골고다 언덕을 오를때도
피투성이의 예수가 어머니를 보지 못했다면
그는 십자가보다 더 무거운 세상이 짓누르는 무게에 그곳에서 그만 쓰러졌을지 모른다.
탑에 연기조사의 어머니는 세상의 무게 우주의 무게를 받치고 있다.
사자들은 그런 어머니를 위무하고 있다.
아
그렇다.
깨달음을 향해 가는자는 중생에게 머리듬이 아니다.
자연이 머리숙여 짐이다.
절을 함은 그래서 나의 생(生)에게 잊지 말기를 고함이리라
昊
사랑하는 우리는 함께 저 탑 앞에 섰었다^^
내가 서있는 이 자리에서 절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