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bye …그리고 너는 떠나가겠지. 찬 바람이 부는 날이야. 너는 무거운 트렁크를 끌고 공항버스를 탔어. 어쩌면 이제 다시는 못 볼 풍경인데 전혀 아쉽진 않아. 그저 후끈한 히터에 짜증만 나. 괜히 핸드폰을 꺼내 보지만 아무도 널 찾지 않아.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볼까 하지만 네 전화번호부는 금세 끝이 나. 살풋 든 잠에서는 그가 눈물을 흘리고 있어. 그 헝클어진 머리칼을 쓰다듬지만 그는 고개를 들지 않아. 고개 들어 봐, 라고 말하려하지만 네 입술은 움직이지 않아. 그의 얼굴을 한 번 더 보고 싶지만 말이 나오지 않아. 겨우 그가 고개를 들자 깨어버리는 너의 잠, 깨져버리는 너의 꿈. 공항 바닥은 매끈한데 자꾸 트렁크 바퀴가 튀어. 공항 복도는 넓기만한데 자꾸 남의 어깨에 부딪혀. 네가 들어갈 게이트는 네가 있는 곳의 반대쪽 끝. 핸드폰을 꺼내보지만 아무도 널 찾지 않아. 전화를 걸까 생각하지만 그러고 싶진 않아. 탑승까지는 두시간 반. 앉아 있는 의자 맞은 편에 있는 건 패스트푸드. 줄을 서서 버거를 사는 알록달록 머리칼. 네가 어젯밤부터 먹은 거라곤 그가 즐겨 마시던 독한 술과 아침의 물 한 모금. 침묵하는 위, 흐릿해진 눈. 너도 몰래 눈물이 흐를 것 같아 서둘러 헛기침을 해. 핸드폰을 꺼내지만 아무도 널 찾지 않아. 폴더를 닫는 탁, 소리가 네 가슴을 쳐. 얼핏 코끝을 스치는 그의 향기. 놀래서 주위를 살피지만 네가 찾는 얼굴은 없어. 목에 두른 머플러가 목을 조여와. 이마에 달라붙는 건 땀에 젖은 앞머리. 공항 게이트로 들어오는 오렌지색 노을. 저 멀리 사라지는 비행기의 궤적. 크흠, 다시 한 번 서둘러서 헛기침을 해. 넌 눈이 부셔 땀에 젖은 작은 손으로 거칠게 눈을 비벼. 축축하고 차가운 손바닥. 얼굴을 묻어도 쉽게 식지않는 눈가. 노을 빛이 더 진해질 무렵 들려오는 탑승 시작 안내. 아직도, 핸드폰을 꺼내지만 아무도 널 찾지 않아. 이마를 짚은 너의 왼손에서 식은 땀이 배어나와. 모든 걸 지웠어도 잊혀지지 않는 그의 번호. 깊고 길고 짙은 한숨, 끝에 나오는 허탈한 웃음. 뚜르르르르르… 신호가 한 번. 뚜르르르르르르… 신호가 두 번. 그의 부재를 알리는 익숙한 여자의 목소리. 눈가를 덮은 너의 왼손에서 흘러내리는 건…. 공항 쓰레기통에는 휴지와 과자봉지와 신문지와… 천천히 네 손을 빠져나가 떨어지는 너의 핸드폰. 툭, 하는 소리도 거의 나지 않아. 위아래로 크게 흔들리는 풍경. 반갑게 인사하는 승무원, 무표정하게 지나가는 경비원, 우는 아이를 혼내는 중년 여인, 설레는 얼굴의 젊은 커플, 하양, 까망, 붉은 얼굴의 외국인, 알아듣지만 들리지 않는 말과 들리지만 알아듣지 못하는 말과 웃음 소리, 괴성 소리, 울음 소리, …그리고 그 사이로 나를 찾는 핸드폰 벨소리. 네가 잠깐 멈춘 것은 아마 트렁크 바퀴가 크게 한 번 튀었기 때문이겠지. 아무것도 먹지 않아서인지 무릎에 힘이 살짝 빠졌기 때문이겠지. 지나가는 찬바림이 땀에 젖은 목덜미를 스쳤기 때문이겠지. 부들부들 떨리는 너의 움켜쥔 주먹, 피가 배어나올듯 입술을 파고드는 이, 뻣뻣하게 긴장해 굳어버린 등, 자꾸만 힘이 빠지려는 다리, 그리고 자꾸만 뜨거워지는 눈가의…. …그리고 너는 떠나가겠지. 빨개진 눈과 코. 목이 메어 잘 나오지 않는 말로 맘에 없는 인사를 받고, 한 번도 사랑하지 못했고, 사랑받지 못했고, 사랑하지 않을 도시에서 떠올라, 저 푸른 바다는 내 이 슬픔보다 깊어, 그러니까 이건 아무것도 아냐, 애써 고개를 돌리고. 자꾸 떠나온 도시를 생각하고, 공항에서 아직 도시가 가까웠을 때, 그 강 옆의 타워 근처에 있는 그의 집이 보였던가를 생각하고, 그곳에 네가 처음 갔던 날 상냥했던 그, 그 생각을 애써 지우고 또 생각하고. 구름 위 햇빛이 눈이 부셔서 그것때문에 눈물이 날 것 같다는 얼굴로, 보지 않을 영화를 찾고, 듣지도 않을 헤드폰을 쓰고. 눈으로는 공항 쓰레기통에서 빛나고 있을 핸드폰을 보며, 귓가에 들리는 익숙한 벨소리. 이제, 그 전화는 분명히 그에게서 온 전화야. 모든 것을 용서해 달라고, 모든 것을 이해하겠다고, 펑펑 눈물을 흘리며 밤을 새 목이 메인 채 갈라진 목소리로 말하는 그의 전화야. 그래, 그렇게 너는 떠나가겠지…. 어제와 같은 하늘인데, 그저 구름이 조금 많고 조금 더 붉을뿐인데….
초유아정
2009-11-12 2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