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상장 50년도 훌쩍 지난 이 상장들을 볼 때마다 눈앞이 부옇게 흐려집니다. 명민했던 소년, 유성렬. 바로 제 아버지입니다. 변색되고 모지라진 낡은 상장이 증거하듯 그는 초등학교 내내 우등을 한 번도 놓치지 않은 참으로 명민한 소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학업은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바로 위의 형이 중학에 진학해야 했기에 둘째 성렬은 어린 나이에 자신이 좋아하는 공부를 중단하고 엿공장에 취직해야만 했지요. 엿공장 일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는 구구히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그의 친구들이 고등학교와 대학을 나와 수리조합의 간부가 되었을 때 그는 수리조합 소속의 최하급직인 저수지 관리인이 되었습니다. 알량한 관리인 월급으로는 제비새끼처럼 입 벌리고 손 벌리는 자식들 뒷바라지가 힘겨웠기에 그는 남의 논을 빌려 남는 것도 별로 없는 선재 농사를 억세게도 많이 지었습니다. 그런데 그 힘든 농사철에도 밤마다 새벽마다 아버진 늘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몸이 고될 법도 한데 당신의 손엔 늘 책이 들려 있었습니다. 당연히 책 욕심도 많았고, 몰래 들여놓은 월부책 때문에 어머니께 여러 소리 들으셨더랬지요. 생각 짧은 자식 놈은 그런 아버지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제 책 사주면 좋아라 하다가도 아버지가 당신 책 사느라 집에 분란이 일면 괜스레 아버지가 미웠습니다. "아빤 맨날 쓸모없는 책이나 들여놓고---." 그리고 죄스러운 기억 또 하나. . . 어렸을 때 저희 삼남매는 초등학교만 나온 아버지의 학력이 늘 부끄러웠습니다. 그래 부모님 학력란에 늘 아버지의 학력을 중졸이라 적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 우리 삼남매가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일관되게 행한 가장 집요한 거짓말일 것입니다. 이제사, 이제사 나는 아버지의 初卒이 부끄럽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간지 10년이나 지난 지금에서야 초졸로 치열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낸 내 아버지가 그 어떤 엘리트 아버지보다 소중하고 기꺼운 존재임을 깨닫습니다. 어제는 서른 여섯 번째 맞는 제 생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다가오는 1월 중순에는 아버지의 기일이 있습니다. 진종일 아버지 생각이 났고 문득 아버지의 상장들이 생각났습니다. 처음 레이에 발을 들이고 나서 엄청난 사진들에 기가 눌려 고민을 많이도 했더랬지요. 무슨 사진을 찍어야 하나, 어떻게 찍어야 하나? 이제서야 저는 제가 무얼 찍어야 하는 지를 분명히 깨닫습니다. 더 모지라지고 이지러져서 사그러들기 전에 나와 우리 가족의 과거를 또 현재를 그리고 다가올 미래를 담는 것. 그것이 제가 사진을 찍는 진정한 목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잠 안오는 새벽, 어지러운 말과 사진으로 심란케 해드려 죄송합니다.
자투리
2003-12-30 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