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대선사
불교정화에 앞장선 청담 대선사는 인욕보살로 더 유명했다.
설법제일 하동산, 정진제일 이효봉, 지계제일 정전강 , 인욕제일 이청담이라고
불가에 희자될 정도로 청담스님은 어떠한 어려움, 수모, 고통도 잘 견디어 내었고
절대로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리는 일이 없었다.
인욕바라밀이 없었다면 불교정화는 실패로 끝났을 지 모른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청담스님은 시종일관 참고 견디며 불교 정화의 기틀을 마련한 근대 한국불교의 대선사였다.
이놈아,심청정 국토청정[心淸淨 國土淸淨]이야!
어느 날이었다. 한 젊은 객승이 도선사 옆 계곡물에 비눗물을 하얗게 풀어대며 머리를 감고 있었다.
마침 법당 마당에서 행선을 하던 청담스님이 이 모양을 발견하고 호통을 쳤다.
"이놈아! 너는 왜 깨끗한 계곡물을 함부로 더럽히며 쓰는 것이냐?"
"스님, 이 물은 흘러내리는 계곡물이 아닙니까?'
"흘러내리는 계곡물이라고 그렇게 함부로 비누칠을 마구해도 괜찮다는 것이냐?'
"참, 스님도......이 계곡물은 산에서 한없이 흘러내리고 있는데 함부로 쓰다니요?"
"이놈아, 아무리 산에서 흘러내린다고 해도 그렇지. 저 아랫 마을 사람들은 이 물로 채소나 과일을 씻고, 놀이 나온 사람들은 이 물로 밥도 짓고 국도 끓이는 걸 정녕 모른다는 말이냐?"
"그거야 그렇지만은......"
"어찌하여 너회들은 네 눈에 보이는 것만 안단 말이냐. 이놈아, 심청정 국토청정이야.
그 후로 다시는 스님들이 계곡물에 빨래를 하거나 세수를 하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그때 이미 자연보호의 중요성을 청담스님은 꿰뚫어 보고 계셨던 것이다.
남을 위해 살면 보살이요, 자기를 위해 살면 중생이지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던 그 무섭던 60년대 초반 박정희대통령시절이었다.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수유리 종점에서 3k로나 되는 가파른 산길을 걸어 청담스님을 만나러 도선사를 찾아왔다. 현성 상좌가 스님에게 말했다.
"스님, 영부인께서 오셨는데 스님께 인사부터 올리겠답니다."
"무슨 소릴 하는 거냐. 절에 왔으면 부처님 참배부터 해야지. 석불전에 참배부터 하도록 하거라."
"예, 그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육여사는 며칠동안 절에 머물려 석불전에 지극정성으로 불공을 들였다. 그때 청담스님에게 받은 불명이 대덕화였다.
"대덕화는 이제부터 보살행을 부지런히 닦아야 해."
" 큰 스님, 보살행을 어떻게 닦아야 하는지요?"
"남을 즐겁게 하는 것이 보살행이요,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 보살행이요, 남을 살리는 것이 보살행이지."
"오로지 남을 위해 살라는 말씀이신지요?"
"남을 위해 살면 보살이요, 자기를 위해 살면 중생이지."
"'예, 명심하겠습니다. 큰 스님. 그런데 큰 스님께서는 국모한테도 너너하십니까?"
"뭐? 국모라고 했나!"
"옛날 같으면 그렇다는 말입니다."
"허허 그래...... 그렇다면 국모 대접 제대로 해 줄 테니 어디 한번 받아 보겠는가?"
"아...아닙니다, 큰스님. 스님께서 스스럼없이 너너 해주시니 꼭 친정 아버지를 보는 것같아 한번 어리광을 부려 본 겁니다."'
"허허...어리광이라..."
청담스님의 안중에는 대통령의 권력도 대통령의 부인도 없었다. 오직 교화해야 할 한 중생만이 있었을 뿐이었다.
극락과 지옥은 마음속에 있다
6.25직전 문경 봉암사에서 수행할 때의 일화이다.
빨치산의 습격으로 봉암사 원주스님이 빨치산 대장에게 잡혀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
"천당입네, 지옥입네, 어디 그런게 있다고 헛소리냐?"
빨치산 대장이 권총으로 원주스님을 위협하며 소리쳤다.
"이 사람을 살려 줘야 겠다고 생각하면 바로 그 마음이 천당이며 극락이요, 이 사람을 죽여야 겠다고 생각하면 그 마음이 바로 지옥인게요."
청담스님의 그 말 한마디에 빨치산 대장의 마음을 움직여 원주스님을 총살 직전에서 구해냈다.
평생을 마음 법문으로 일관한 스님의 명설법이었다.
중 밥상 세 가지 반찬이면 족하다
청담스님이 정화종단의 총무원장을 맡고 있을 때였다.
출가한 딸 묘엄 비구니스님이 찿아왔다. 마침 점심공양 중이었는데 청담스님 공양상에는 시래기 국 한 그릇, 김치 한 접시, 간장 종지 하나만 달랑 놓여 있었다.
"아이구 스님... 공양상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그래도 나 한테는 반찬 한 가지 더 있는 거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래도 오늘은 간장 한가지가 더 올라왔지. 중 밥상 세 가지 반찬이면 족하지 않나?"
도선사에 주석할 때의 일화이다.
스님은 죽을 쑤되 멀겋게 쑤라고 공양간에 신신당부를 했다.
"옛 스님네들은 아침에 죽을 쑤되 그 죽에는 하늘이 보일 정도로 멀거야 했고 방안에서 들여다 보면 천정이 그대로 다 들여다 보일 정도로 검소했다고 한다."
청담스님은 도선사 수행자들에게 아침 공양으로 죽을 먹게 했다. 시주의 은혜가 막중함을 몸소 실천하고 가르쳤던 것이다.
뒤에 오는 사람들을 위해 겨울이면 항시 걸망에 꽃삽을 넣고 다니며 길 위의 얼음을 치우며 보살행을 실천했고 콩나물 대가리 하나 버리면 불호령이 떨어지는 평생 근검 절약이 밴 몸으로 불교의 중흥을 위해 헌신하다 열반에 든 근대의 고승이었다.
[출처] 禪談野話/ 인욕제일 청담 대선사 ㅡ남을 위해서 살면 보살이요, 자기를 위해 살면 중생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