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eju
2009, LG LH-5000
세 번째 올레 길,
그리고 다시 1 코스를 걸었다.
앞이 아른거릴 만큼 비가 세차게 쏟아진다.
올레 길에 앞서 챙겨간 카메라는 모두 두 대.
필름 카메라 하나와 액정조차 없는 작은 토이 디카.
무서울만치 내리는 비 때문에 필름 카메라는 배낭에 꼭꼭 숨겨두고
토이 디카의 전원을 켰다.
그러나 건전지가 다 닳은 것인지 켜지지 않는다.
비 때문에 먹구름이 해를 다 먹어치운 광치기 해변.
자그마한 목초지도, 바다도, 하늘도 온통 푸름의 연속.
비가 언제 그칠지 예상조차 못 하던 그때,
세상에서 오로지 혼자인양 여유롭게 풀을 뜯던 조랑말.
이 순간만큼은 멈춰진 듯 했다.
그리고 이내 그 순간을 유일하게 기록할 수 있었던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핸드폰 카메라는 단지 편의를 위한 기능일 뿐,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