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사진 1
그 때까지, 내게 록산나는 그저 거리에서 자라는 아이였다. 학교는 다니는지, 집은 어딘지, 부모님은 계시는 지, 알 바가 없었다. 물어봐도 대답하지 않으려 했다. 비록 철부지 아이라고 해도 말하고 싶지 않은 사생활은 존중해줘야 한다. 내가 아는 건 록산나가 일곱 살이라는 것 뿐이었다.
“원 루피, 플리즈! 원 초콜릿, 플리즈!”
관광객들이 나타나면 득달같이 달려가서 악다구니를 쓰는 록산나. 인심 좋던 예전과는 달라서, 아이들에게 돈을 주는 외국인들은 거의 없다. 이런 꼬마들을 위해 가방에 초콜릿과 사탕을 넣어다니는 현명한 관광객들 덕분에 록산나는 아랫니 두 개가 모두 빠져버렸다.
록산나의 부모님을 만나게 된 건 정말 우연이었다. 천막이나 리어카도 없는, 의자마저 하나 없는 완벽한 노천 스탠딩 까페.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철공소에서 용접해 만든 케로신 가스 버너로 차를 끓이고 있었다. 우유 홍차 한 잔에 3루피(약 40원)…. 가스 버너 주위엔 여섯 명이 있었다. 차를 끓이는 남편, 손님이 마시고 난 유리컵들을 모아 공동 식수터로 가서 설거지를 해오는 아내, 그 주위에서 설탕을 훔쳐 먹거나 버너의 사용법을 관찰하며 시간을 보내는 네 아이들. 남편에게 슬며시 물어봤다.
“이거 말고 다른 일도 하세요?”
“아뇨. 할 수 있는 게 이거 밖에 없는 걸요.”
“그럼, 두 분이 여기서 찌아를 팔아 네 아이를 키우고 계시는 거예요?”
“아뇨. 아이가 둘 더 있어요. 모두 여섯 명이죠.”
찌아를 마시고 있을 때, 교복을 말끔히 차려입은 여자 아이 둘이 버너 앞으로 달려왔다.
“학교 다녀왔습니다! 어, 아저씨네! 아버지, 나 이 아저씨 알아요!”
록산나였다. 순간, 미안하고 창피한 마음에 아이를 바라보기가 민망했다. 그 동안 나는 록산나가 집 없는 아이이거나 부모님 없는 고아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신원을 캐묻는 내 질문에 대답하기를 꺼려했던 록산나의 마음을 다시 헤아려봤다. 내 경솔한 예상과 달리, 록산나는 자기의 부모님과 가난을 부끄러워한 게 아니었던 것 같다.
“아버지, 제 사진 찍어준 사람이 이 아저씨예요. 아저씨, 우리 가족들 사진 한 장만 찍어주세요! 가족들이 다 같이 나온 사진이 한 장도 없어요. 네?”
록산나의 아버지는 찌아 값 3루피를 받지 않았다. 사진을 찍어주고 돌아서는 길에 록산나가 조르르 내게 달려왔다. 아이는 쑥스러운 듯 씩 한 번 웃더니, 불쑥 내게 손을 내밀었다.
“떠빠이 메로 사티호. 호이나?” (아저씨, 내 친구 맞죠?)
(왼쪽에서 세 번 째 아이가 록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