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있나요? 내 첫사랑들> 03 _ 개들의 도시
까트만두는 개들의 도시다. 태국 카오산 로드에서도 거리의 개들을 많이 봤지만,
그곳의 개들은‘쪽수’에서 사람한테 게임이 안 되는‘마이너리티’였다.
카트만두? 이건 아예 사람 반, 개 반이다.
사람의 집에 사는 애완견도 간혹 눈에 띄지만 네팔의 개들은 거의 모두 길에서 산다.
길거리의 개가 너무 귀엽거나 가여워서 집에 데려다 키우려 해도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관공서의 승인 없이 개를 포획하는 것 자체가 불법.
그러니 이곳에선‘집 잃은 개’혹은‘집 없는 개’라는 말이 성립하지 않는다. 당연히 거리는 ‘개판’이다.
길을 걷다 보면 채이는 게 개들이고 밟히는 게 개똥이다.
이 정도면‘견(犬)구 조사’같은 게 필요하지 않을까.
2005년에 실시된 인구 조사에 의하면 카트만두의 인구수는 약 2백만 명.
나의‘눈 통계’로 어림짐작해 보건데 카트만두의 ‘견구수’는 약 1백만 마리는 족히 될 것 같다.
이 많은 개들 중 우리에게 친숙한‘시츄’니‘슈나우저’니‘코커스 패니얼’등의 개들은 절대 볼 수 없다.
집에서 길러지는 개들조차 우리가 흔히‘잡종’이나‘똥개’라고 낮춰 부르는 종들 뿐이다.
낮동안, 개들은 인간들 앞에서 납작 엎드려 지낸다.
응달을 찾아 새우처럼 몸을 말거나 아예 ‘ㄷ’자로 뻗은 채 자다 깼다 하며 밤이 오길 기다린다.
가끔, 세상 물정에 밝지 않거나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개들이
골목길이나 도로 한 복판을 가로막고 누워 교통체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밤이 오면?
9시 경을 넘기면 '쪽수'에서 개들이 절대적으로 우세하다.
상점과 음식점 등이 모두 문을 닫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TV를 보다가 10시가 채 되기 전에 잠자리에 든다.
가로등이 거의 없어 어두컴컴한, 게다가 이런 어둠이 전혀 불편하지 않은 개들이 활개치는 밤거리를 걷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다.
낮동안 오토바이, 자동차, 사람떼에 치이고 주눅들었던 녀석들은,
밤의 점령군이 되어 떼지어 몰려다니며 간 큰 사람들을 위협한다.
자정 즈음을 넘기면 자기들끼리 영역 다툼을 하느라 물어뜯고 싸우는 녀석들의 포효와 비명 소리가 사위에 울려퍼진다.
예민한 사람들만 그 소리에 잠시 잠을 설칠 뿐, 인간들은 개들의 사회에 절대 간섭하지 않고,
바깥의 밤을 고스란히 그들에게 내어준다.
아침이 오면?
개들은 간밤의 왕성한 야생 활동으로 얻은 상처와 피로를 안고 길가에 널부러져 있고,
사람들은 그들을 가급적 밟지 않으려 노력하며 분주히
인간의 세상을 회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