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회하고 일년이 지날 무렵, 다른 두명의 수련자와 함께 어느 종합병원으로 실습을 나가게 되었다. 그때가 마침 IMF때라 사람들이 아파도 입원을 하지 않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그 병원의 병동들도 비어있던 곳이 많았다. 우리 세명의 수련자들은 사용하지 않는 한 병실을 공동 침실로 사용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한 병원실습은 여러 웃지 못할 실수들 그리고 잊지 못할 값진 체험들로 채워졌고, 어느새 6주란 시간이 지나갔다.
병원 실습 마지막날, 우리는 그동안 사용한 병실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어느 수련자가 자기가 사용했던 침대 시트를 벗겨내서 그것을 꾸깃꾸깃 말아서 아무렇게나 놓아두는 것이었다. 나는 이미 사용한 시트라도 잘 개서 남겨두고 싶어서, 그것을 집어들고는 다시 접기 시작했다. 그것을 지켜보던 그 수련자는 "세탁기에 넣으려면 개어놓은 것도 일부러 구겨서 넣어야 하는데 왜 개고 있냐?"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난 일주일간 스페인의 어느 작은 도시에 머물게 되었다. 함께 살고 있는 동료 예수회원의 사제 서품식이 그곳에서 치뤄졌기 때문이었다. 일주일간의 시간을 마무리하고 그곳을 떠나는 날 아침, 사용한 침대시트를 벗겨내고 내가 있던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내가 의자위에 놓아둔 침대시트를 우연히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는 잠시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았다. 내 나름대로, 반듯하게 살려고 무진장 노력했던 시간. 남에게 반듯하게 보이려고, 그리고 내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도 무단히 반듯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지금, 반듯하지 못한 구겨진, 하지만 그것이 있는 그대로의 나이기때문에 의미있고 소중하다. 그래서 마음대로 구겨진 침대시트가 편하다.
July 2009, Valladolid Sp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