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새
김 지 하
저 청청한 하늘
저 흰 구름 저 눈부신 산맥
왜 날 울리나
날으는 새여
묶인 이 가슴
밤 새워 물어 뜯어도
닿지 않는 밑바닥 마지막 살의 그리움
피만이 흐르네
더운 여름날의 썩은 피
땅을 기는 육신이 너를 우러러
낮이면 낮 그여 한 번은
울 줄도 아는 이 서러운 눈도 아예
함께 답새라.
아 끝없이 새하얀 사슬 소리여 새여
죽어 너 되는 날의 길고 아득함이여
낮이 밝을수록 침침해 가는
넋 속의 저 짧은
여위어 가는 저 짧은 볕발을 스쳐
떠나가는 새
청청한 하늘 끝
푸르른 저 산맥 너머 떠나가는 새
왜 날 울리나
덧없는 가없는 저 눈부신 구름
아아 묶인 이 가슴
살다보면 좁다랗고 쩨쩨한 생각을 전변시키는
위대한 말들과 조우하게 될 때가 있다.
이마 여기저기로 벌겋게 솟아오른 여드름 뾰루지에 적잖게 신경이 가던
아주 오래전의 어느 여름날, 나는 김지하 이야기 모음 <밥>을 읽으면서
해월이 말한 향아설위(向我設位)에 대해 알게 되었다.
죽은 뼈다귀를 향한 거짓 제사(向壁設位)가 아닌,
나를 비롯한 모든 이의 내면에 깃든 한울님을 향한 진정한 제사.
반상과 노장, 남녀와 빈부의 차별과 위계를 일거에 무화시키는
최보따리 해월의 말씀은 내 마음에 깊이 들어와 박혔다.
비록 어리고 아둔했지만 미약하나마 한울님과 인간에 대한
바른 생각의 씨앗을 얻어 갖게 된 계기가 아니었나 싶다.
금옥의 말씀을 건네준 김지하를 나는 참 오래도록 좋아했다.
바른 말과 글이, 바르다는 그 이유로 옥죄임을 당하던 금서와 금기의 시대.
자실(자유실천문인협의회)에서 펴내던 작은 문고본 소식지에서 만난
그의 시와 강연은 얼마나 큰 울림으로 다가왔던가.
오랜 세월 한국 민주주의와 작가 정신의 온전한 상징이었던 그는
91년 '죽음의 굿판' 기고 이후 모든 민주진영의 공적으로 비난받는 신세가 된다.
전선을 분열시키고 동지들과 후배들의 등에 비수를 꽂았다는 당시의 평가는
아직도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서 유효하게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달 평택에서 있었던 조찬 포럼 강연에서 김지하를 만났다.
방귀깨나 뀐다는 시골 토호들이 모여 '가오 잡는' 조찬 포럼이야
늘 관심 밖의 일이었지만 김지하의 육성을 마지막으로 듣는 기회가
아닐까 싶어 아침 단잠도 물리치고 단걸음에 강연장으로 달려갔다.
건강이 좋지 않아 앉아서 ?Ю?시작하겠다고 먼저 양해를 구한 그는
이후 두 시간이 넘도록 신명나게 말의 성찬을 쏟아냈다.
언어 하나로 좌중을 밀고 당기는 그의 솜씨는 가히 천재적이라 할 만했다.
동서와 고금을 종횡하는 그의 말들은 아시안 네오 르네상스라는
자기 나름의 화두와 단단히 결합되어 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강연을 듣는 동안 내 마음 속에 떠오른 생각은
'저이는 아직 제 맘의 주인이 되지 못했구나'하는 것이었다.
그의 육신과 영혼을 갈가리 찢어 놓았던 세상과 인간에 대한 분노는
많이 사그라들긴했지만 아직도 식은 재 밑에 온전한 불씨로 남아 있는 듯 싶었다.
그는 서운한 것이 많아 보였다.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민주화 운동에 대한 많은 평가와 배상이 있었지만
정작 7,80년대의 어둠을 오롯하게 껴안은 자신의 희생을 돌려놓은 것이라든지,
자신이 생명사상을 주창할 때 전향, 훼절, 투항이란 단어를 써가며 비난하던 싹수없는 후배들이
이제 와서 환경과 생태를 내세우며 설쳐대는 꼬락서니에 그는 심한 배신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학이편 일장 삼절에서 중니(仲尼)는 말한다.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남들이 몰라줘도 성내지 아니하니 또한 군자가 아닌가?
외물에 흔들리지 않는 내 맘의 온전한 주인, 그이가 바로 군자다.
이 글을 쓰는 동안 내 머릿속에 김지하와 연관된 두 사람의 모습이 떠오른다.
한 사람은 무위당 장일순이고 또 한 이는 오에 겐자부로다.
이이들이야말로 중니가 말한 군자의 모습에 가까운 이들이 아닐까.
무위당은 김지하가 고3 때부터 받들어 모신 스승이다.
평생 민중의 가랑이 사이를 기었던 무위당은
지식인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자신의 생으로 증명한 이다.
그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원주 사람치고 그와 말 한 마디 소주 한 잔
주고 받지 않은 이가 별로 없었다고 하면 사람들은 믿을까?
말하기보단 듣기를 즐겨하고 낯세우는 자리에서는 언제나 자신을 뒤세우며
궁벽한 시골에 앉아서도 고요히 세상의 미래를 읽어내던 이.
내 보기에 김지하는 명민함에서는 스승인 무위당을 압두했을지 몰라도
사람다움에 있어서는 스승의 발뒤꿈치에도 이르지 못한 듯 싶었다.
오에는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김지하와 두 번이나 대담을 나눈 일본의 작가다.
이 대담에서 김지하는 오에가 가진 세계관의 협착함을
읽는 내가 다 무안할 정도의 언사로 비판한 바 있는데,
오에는 일부의 주장은 전폭적으로 수용하고 또 일부는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면서도
김지하의 동양적(한국적) 세계관의 가치를 크게 인정하는 통 큰 모습을 보였다.
일방적인 훈계와 무례에 가까운 상대의 말을 고요히 경청하고
그 속에서 자신이 귀기울여야할 점을 찾아 적극 수용하는 오에의 모습은
화이부동을 내재화한 군자의 모습, 바로 그것이었다.
노무현의 죽음으로 많은 이들이 가없는 슬픔에 잠겨 있던 때,
김지하가 지방지에 쓴 시론 하나가 또다시 많은 이들을 분개하게 만들었다.
문제가 된 것은 '봉하마을에서 악을 악을 쓰는 맑스 신봉자들'이라는 표현과
'비극적 숭배열에 의한 명백한 부패와 생명 포기라는 비겁성의 은폐'라는 대목이 아닌가 싶다.
이는 얼마 전의 황석영 옹호 발언과 91년 죽음의 굿판 발언에 덧씌워져
김지하를 구제불능의 치매노인이자 '듣보잡'으로 전락시켰다.
촛불을 아름다운 민중의 성심이자 역사에 대한 한울님의 준엄한 명령으로 보았던 그가
촛불의 민심과 그다지 다를 바 없는 노무현에 대한 조상(弔喪)을
맑스 신봉자의 악다구니로 전혀 다르게 해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강연회 날 그가 놓고 간 책의 서문에 나와 있었다.
선구자적 희생과 예언자적 지성으로 시대의 어둠을 열어젖혔다고 믿는 자신을
이제는 용도폐기된 뒷방 늙은이로 돌려놓은 이 무정한 세상과 야박한 인간들에 대한
서푼짜리 분노와 원망을 완전하게 씻어내지 못한 탓이다.
자기를 알아주는 이를 위해 목숨을 버릴 수도 있는 것이 인간이라면
자신의 진정을 몰라주는 세상만큼 원망스러운 것이 또 어데 있으랴.
하물며 자신이 모든 것을 바쳐 만들어낸 세상에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맘껏 향유하는 이들이 이십년 전의 한 마디 말을 기화로 자신을 사갈시한다면....
이리 보면 진정을 배반당한 그의 쓰리고 아픈 속을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한두 마디의 말만으로 그 사람의 삶을 재단하는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황석영의 실언이 또 김지하의 입찬말 몇 마디가
그들이 걸어온 뜨거운 삶의 진정성을 부정하는 근거일 수는 없다.
그들을 김동길이나 지만원 따위와 동렬에 세우는 무례는 범하지 않는 게
그들의 희생에 빚진 우리들이 표해야 할 최소한의 예의가 아닌가.
폭압의 세상을 싸워 이긴 투사이자 언어가 가진 힘을 증명해낸 위대한 시인이었으며
수입 담론에 길든 우리들에게 민족적 담론을 펼쳐보인 위대한 사상가인 김지하.
하지만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 똬리를 튼 분노에 휘둘리고 인간적인 외로움에 괴로워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나는 제 마음의 주인 되기가 그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다시금 실감한다.
마음의 온전한 주인이 되지 못한 채 진에(嗔恚)에 잡혀 사는 시정아치의 삶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나는 장황하고 어쭙잖은 이 글의 말미에서
청량산인이 노래한 시의 일절을 떠올리며 끝없는 상념에 젖는다.
우부(愚夫)도 알며 하거니 그 아니 쉬운가.
성인도 못 다 하시니 그 아니 어려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