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짧은 단상
조선일보 사설을 몇 개 정독했다.
정말 간만에 피가 거꾸로 솟는다..
예전 여행 사진을 보여 마음을 가라앉히려는데 이 게가 꼭 그 같아서 몇 자 적는다.
똑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늘 생각하고 강조했던건
[다름을 긍정할 수 있는 강자가 되자] 다.
이게 다른걸까?
이 꼬라지가 '다름' 이란 말인가?
이 큰 증오가, 혐오가 그런 말로 설명될 수 있을까?
케이컨 드라카는 자기에게 조소를 보내며 이렇게 말했다
[사랑하기 위해 사는 삶을 원했습니다.]
나가들은
그의 진심을 기만했고
그의 왕국을 멸망시켰고
그의 아내를 잡아먹고
그의 친구를 죽였다.
그는 나가들에게 증오를 제외한 모든것을 빼았겼다.
그래서 그들에게 줄 것이라곤 증오밖에 없었다.
오늘따라 논어에 자꾸 눈이 간다
[내 슬픔이 지나치느냐? 내가 그의 죽음에 울지 않으면 어디서 울란 말이냐.
나는 이제 끝장이 났다.
내 학문 전할 이가 요절했다.
나는 이제 끝났다.
하늘이 날 버리는 구나
하늘이 진정 날 버렸어!]
[이게 그의 목이더냐?
이런 천노할 일이 어디 있더냐
이런 비통한 일이 또 어디 있단 말이냐
이 세상에는 몽땅 짐승들만 사람들만 산단 말이냐!]
공자는 자기 부모와 자식의 죽음도 자신의 평소 생각에 따라 정갈히 치뤘으나, 안회와 자로의 죽음에는 이성을 잃어보일 정도로 슬픔을 표했다.
안회는 어려서부터 집이 아주 가난하고 몸이 허약해서, 30살에 완전한 백발이 되서 32살의 아주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그 사후 한참 후에 제공이 '제자들이 어떠합니까?'라는 질문에
공자는, [누구 누구가 이러저러 한데, 가장 뛰어난 자는 안회였습니다. 저는 그처럼 학문하기를 좋아하고 즐기는 이를 본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만 일찍 죽었습니다. 그리고는 없습니다. 다시는 그런 이를 본적이 없습니다.] 라고 대답하고는 그자리에서 눈물을 보였다.
자로는 공자의 제자들 중 가장 초기 제자로써, 거친 사냥꾼이었으나 말년에는 대의를 위해 그 목숨을 던졌으며 자신을 죽이려는 자에게 [기다려라. 스승께 배웠다. 군자는 갓을 비뚜루 쓰지 않는 법이라.] 한 후 갓을 고쳐 쓰고 죽었다.
그는 공자 평생에 걸친 가르침의 결정체이자 그가 곧 공자 사상의 증거 자체였다. 그런 그가 참혹하게 죽어 소금에 절여 오자 그는 울부짖으며 집안의 소금독과 절임 음식통을 몽땅 다 깨버렸다.
그리고 홧병을 얻어 죽었다.
그는 말했다.
[평생을 걸쳐 생각을 같이할 수 있는 사상적 동지를 만나는 것이 가장 복 된 일이다.]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떠난것이 그토록 슬픈 일이라는 것을,
내가 동의 할 수 있는 생각을 말하던 이의 죽음에서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