므 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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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새벽 두시에 출발했다. 예정에 없이 따라나선 R은 오른쪽으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잠이 들었다. 휴게소에 들렸음에도 그녀는 깨어나지 않고 잠들어 있었다. 5월 새벽은 쌀쌀했다 나는 한겨울처럼 몸을 바들바들떨었다 오른쪽 옆에 주차되어 있던 차에서 흡연을 하며 남자 셋이 걸어왔다 차 안에 있는 나와 그와 R을 힐끔거리다가 흡연을 마치고 오른쪽 옆에 주차되어 있던 차에 오른다. 그들이 가고 난 후, 난 연보라색 후드를 뒤집어 쓰고 화장실 앞으로 갔다 몇몇의 어린 남자들과 상한 머리칼을 가진 여자가 스낵코너로 들어갔다 나는 겨울처럼 추워서 몸을 떨다가 초생달을 올려다봤다 날카로운 달도 춥다, 내가 좋아하는 달인데.
집에 가는 길이면서, 나는 항상 "우리 어디 여행가는 것 같아."라고 말했다 그러면 옆에 있던 그와 R은 맞아 우리 여행간다, 어디 바다라도 갈까? 하며 여행기분을 함께 느껴준다 나는 새벽 두시에 문득, 우포늪이 떠올랐다 새벽에 출발하여 쭉, 내리 밟으면 안개 짚은 우포늪에 도착한다는 그 늪에 빠지는 게 아니라 안개 속으로 빠지는 것 같은 우포늪. 한번도 가 본 적없는 곳을 상상하며 근처 바다라도 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말, 근처 바다를 찾고있던 mgo. 고, 정말 가자. 집에 가는 길에 무슨 바다가 있지? 다 집을 넘어서는 바다 뿐인데. 그럼 송악에서 빠져볼까? 아니야 하며 다시 네비를 만지작댄다 집에 가는 길에는 없다, 이거.
며칠 전 부터는, 열심히 살고싶은 마음에 밥을 잘 먹는다 설거지도 열심히 한다 똥도 열심히 싸고, 욕도 열심히 하며 걱정과 고민도 그 어느 때 보다 열심히 하고있다 그러다 다시 밥을 잘 먹고 얘기를 하며 웃고 떠들고 뭔가 심기불편해지는 상황이 닥치면 열심히 싸우기도 하며, 그러다 마트에 가자는 한마디에 밤 열시, 맨 얼굴로 마트에 도착했다 무엇에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그에게 기분 나쁠 말을 던졌던 모양이고 화가 치밀어오른 그는 격한 드라이브로 나를 살릴똥말똥. 괜찮았잖아, 좀 전까지는. 웃기는 기분이라고.
겨울겨울겨울겨울, 나는 겨울이 좋아 가만히 있어도 몸이 떨렸으면 좋겠어 겨울로 가자. 제발, 여기는 왜이렇게 춥지? 겨울도 아니면서 말이야. 차라리 겨울이면서 추웠으면 좋겠어. 그럼 내 몸이 떨려도 나는 용서할거야. 새벽 여섯시에 눈을 감고도 잠 못 드는 내 몸, 오른 팔을 귀엽게 만세 하며 잠든 R을 한번 뒤돌아보고 추울까봐 창문은 닫았는데, 커텐도 닫아야할까 하다가 나도 그만 침대로 가야겠다 생각하지. 우린 오늘 사진을 찍을거야, 너는 내일 사진을 찍을거야, 당신은 3년전에 사진을 찍었지.
우린 새벽 두시 십분에 출발했다, 셀프주유소에서 기름한번 넣어주고 서해안을 타고 직진만 하다 도착하니 새벽 세시 십분. 한시간 걸렸어, 아니야 한시간은 아닐거야. 그래 이 시계는 4분 빠르고 휴게소에도 들렸으니까 44분 정도 걸렸다고 해줄게.
photographed by sohhn.
x-700
2009, 겨울영월
w_09'05 / 19,06:19 / ㅅㅅ. 나는 점점더이상해.
그는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전혀, 지킬 필요도 이유도 없었다 그에겐.
나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 여자와 계속 연락하고 싶은 것 같다. 그러라고 했다.
그러라고 했는데, 그는 화를 낸다. 이상하다.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 되는가.
20090521. 므 3: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