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e
나를 빛낸 虛想과의 이별/후시아
햇볕 강한 낮일수록
나비 같은 몸짓들만 있었다
허기진 몸짓은 보이지 않았다
기력 없는 그림자로 살고 싶을까
밤은 어둠이 있어서 평온하다
어둠 뒤에 숨어 있는 빛
빛을 깔고 깨어나는 밤의 속성
마침내 밤은 흙이 되어 새싹들을 틔운다
허기진 것들을 위하여
그 밤에 꿈을 꾼들 어떠하리
연두 빛 저고리에
노을 빛 치마를 차려 입고
새벽 이슬로 목을 축여 첫 기도를 올리고
그리움이 된 눈물은
비가 되어 갈증을 풀어주고
열정의 순간처럼 벌판을 발칵 뒤집어 놓는
바람의 손바닥에 연서를 써서 보낸다
천년의 기다림으로 필 것 같은 꽃
꽃 피는 그 날은
꿈속에서 마냥 행복했던
나를 빛낸 허상(虛狀)과의 이별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