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칼을 위하여
드라마 대장금을 보다 보면 훗날 수랏간 최고상궁 자리에까지 오르는 한상궁이 요리를 하는 장면에서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보는 부엌칼과는 사뭇 다른 느낌의 칼 하나가 등장한다. 날렵하고 세련된 느낌의 반짝거리는 스테인레스제 칼이 아닌 다소 투박하고 묵직해 보이며 거무튀튀한 모습의, 전통 방식으로 풀무질을 한 다음 강철을 직접 두들겨 만든 남원칼이 바로 그것이다.
일제시대인 1922년 조선부업공진대회라는 산업제품경진대회에서 일약 금상을 수상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남원칼은 원조격인 장인 한영진씨가 대장간 대를 잇지 못하면서 자칫 사장될뻔 하기도 했지만, 바로 이웃에서 3대째 대장간을 하던 장인 박판두씨(63세)에 의해 맥을 잇게 됐다.
나이 열아홉 살 때인 1964년부터 아버지와 집안을 돕기 위해 대장간 일을 시작한 그는 우리나라의 급속한 산업화와 맞물려 그동안 주로 만들어온 괭이, 낫 등 농기구의 수요가 급감하자, 아버지와 의논해 이후로는 부엌칼 하나만을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들기로 결정했다.
이때부터 남원 박씨네 대장간 칼이 쓸만하다는 입소문이 알만한 사람들 사이에서 돌기 시작했다. 그러자 전국 각지 대장간에서 모방 제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안 되겠다 싶어 그는 우리나라 대장간 역사상 처음으로 자신이 만든 칼에 ‘南原’이라는 낙관을 새기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남원 지역의 다른 대장간들 중 일부가 ‘南原’이라는 낙관을 새기는 문제가 발생했다. 남원에서 만든 칼이기 때문에 ‘南原’ 이라고 새긴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었다. ‘南原’이라는 지명이 자기 혼자만 쓸 수 있는게 아니므로 그걸 막을 방도가 없다고 판단한 그는 다시 ‘‘南原 朴’이라고 낙관을 바꿔 새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하나의 브랜드로 정착된 그의 칼은 요리 전문가들 사이에서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드라마 대장금에서 한상궁이 요리를 할 때 손만 나오는 장면 대역을 맡았던 한 요리전문가는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세상에서 가장 좋다는 칼들을 두루 써봤지만, 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게 박판두 장인의 칼”이라며 ‘세계 최고의 칼’이라고 극찬했을 정도이다.
그의 칼이 남달리 인정을 받는 이유는 3대에 걸쳐 쇠를 다루어 온 장인 가문의 축적된 노하우에다가 특유의 성실한 장인정신이 보태졌기 때문이다. 재료는 반드시 철도레일에나 쓰는 강철만 쓰는 등 좋은 것만을 선별해 사용하고, 비록 편하고 쉬운 방법일망정 절대 강철 이외의 재료를 덧대 칼을 만들지도 않는다. 칼날이 휘어지면 망치질을 통해 몇 번이고 바로 잡을뿐이다. 부러질지언정 휘지는 않겠다는 고집이라고나 할까. 또 아무리 이문을 많이 남기는 일이라 할지라도 사람에게 이로운 음식을 만들어주는 부엌칼 이외 다른 칼은 일체 만들지 않는다.
이런 장인정신이 은연중 통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전화 등을 통해 종종 낯선 이들에게서 고맙다는 인사를 많이 받는다. ‘칼을 잘 만들어줘서 정말 잘 쓰고 있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얼마 전부터는 미국의 LA와 독일 등지에서까지 꾸준히 주문이 들어오고 있는 중인데, ‘관광길에 하나 사서 써본 뒤로는 다른 칼은 도저히 눈에 차지 않아서’라는 게 국경을 넘는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그의 칼을 찾는 이유라고….
올곧은 장인정신으로 마침내 일가를 이룬 그의 칼이 지금처럼 앞으로도 세계 최고라는 평 속에서 오래도록 계승돼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