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붉은 달. 밥을 먹고 저녁 공부를 하러 어학실에 올라갔는데, 문이 잠겼다. 개방 시간을 잘못 알고 있었나 보다.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와, 근처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평소 즐겨 마시던 캔맥주를 꺼내 들려다가 다시 내려놓고 그 옆에 있던 아사히 맥주를 집어 들었다. 이거 맛있을까? 우리 학과 건물 앞에는 조그만한 동산이 있다. 잔디밭 언덕에, 듬성듬성 심어진 나무들 사이로 몇개의 벤치가 있다. 거기에 나란히 앉은 우리 셋은 각자 다른 종류의 캔맥주를 땄다. 치익. 새롭게 먹어본 맥주맛은 그저 그랬다. 나에겐 너무 가벼운 맛이었다. 그냥 마시던 걸로 사올걸 그랬나 싶었다. "그런데 누나, 누나는 남자친구 없었어요?" 옆에 있던 후배 녀석이 내게 물었다. 붉은 달이 지구 가까이에 와 있었다. "글쎄, 없었나? 그런데 또 없었다고 말하기엔 뭔가, 이상해." 옛날 일들을 떠올리면서 나는 다시금 괴로워 졌다. 보다 못한 친구가 날 대신해서 한마디 던졌다. "단 하루를 만나도 우리 사귀어요, 라고 말하면서 만나는 것과 일년, 십년을 만나도 숨겨진 채로 만나는 건 천지 차이야." 내 뱉은 한번의 숨이 공기 중으로 짙게 흩어졌다. 나는 얕으막하게 경사진 저 잔디밭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 보고 싶었다. by. 로즈마리화나 (RoseMariJuana, 1986)
RoseMariJuana
2009-04-10 0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