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우도 호텔
호텔을 나설 때 아무것도 없는 탁자위에 무언가를 놔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아무 것도 놓고 오지 않았다.
공항 근처에 있는 호텔에선 바람소리가 났다. 구오오오라던가, 휘이잉이라던가
정확히 어떤 톤으로 어떤 느낌으로 바람이 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 소리가 들릴 때마다 나는 호텔의 쇠락을 생각했다. 건물에 원인을 알 수 없는 균열이 늘어가고 종업원들의 표정은 어두워지고 음식은 점점 맛이 없어진다. 그리고 찾아오는 손님들이 줄어드는 그런 쓸쓸한 느낌을.
묵었던 방과 짧은 굿바이를 나누고
프런트를 향해 가는 동안 그 느낌은 점점 커져갔다. 친절한 웃음을 보여준 직원과 인사를 나눌 때도 나는 그 답례만큼의 미소를 보여주지 않았다. 단지 이곳을 가능한한 빨리 나가라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희미하게 웃고 있었는지도.
내가 묵었던 방에선 호텔 뒤의 숲이 보였다. 아침이면 자욱이 안개가 끼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새들의 울음 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안개는 늘상 숲을 지배하고 있다는 느낌으로 퍼져있었다. 나는 그 안개에서 이 호텔마저도 지배하고 싶다는 의지를 느끼곤 했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채 안개는 사악한 분위기를 피워내고 있었다.
호텔에 묵는 동안 아침이면 일층에 있는 수영장에 내려가 수영을 했다. 역시 수영장에도 나 이외에 다른 손님은 없었다. 걸을 때마다 텅텅 큰 소리가 울렸고, 이 거대한 양의 물을 나 혼자 써도 되는지 어딘가에 허락을 구하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여지없이 물속에 뛰어들어 차가운 느낌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수영장은 온통 통유리로 쌓여 있어 수영을 하면서도 숲을 볼 수 있었다. 숲은 여전히 안개에 쌓여있었다.
나는 숲과 안개의 그 완강한 결속을 보며 어쩔 수 없는 숙명 같은 것을 생각했다. 모든 나무를 잘라내지 않는 이상 안개는 어김없이 찾아올 것이다. 내게도 그런 안개와 같은 존재가 몸 속 어딘가, 아니면 내가 알지 못하는 동안 습관의 형태로 내 주위를 떠돌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가끔씩 우울해진다든가, 모호한 표정이라든가. 백해무익한 생각이지만, 그건 그 나름대로 어딘가 또 쓸모가 있을거라는 위안을 삼았다.
폭풍이 오기 전의 샤이닝 호텔 같은 그곳을 떠나오며 나는 거대한 생물의 쓸쓸한 퇴화를 생각했다. 언젠가 다시 오게된다면 나는 이곳에서 폐허를 목격하게 될지도 모른다. 시간은 흘러가고 정해진 수순을 밟아 모든 것은 하나하나 어딘가로 이동해 갈 것이다. 먼저 사람이 빠지고 건물의 쓸모 있는 물건들이 빠지고... 마치 수영장의 물이 메말라가듯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