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건 물을 확 쏟아 붓기 전에 언능 그냥 가지 못혀?”
옛날에는 오일장이 열리는 날이면 수십 개에 달하는 장옥마다 아침 일찍부터 장사 준비를 하는 장꾼들로 북적였지만, 장터 경기가 쪼그라 든 요즘 들어서는 문을 안 여는 점포가 부쩍 많아졌다.
그나마 민족의 큰 명절 설날을 앞두고 반짝 활기를 띠더니만, 3월1일 쌍암장은 장꾼들 사이에서 ‘오늘 장이 될까 모르겠다’는 우려가 쏟아져 나올 정도로 분위기가 바닥이었다. 2월26일 장을 연 뒤 이틀 남짓 지나 다시 장을 열다 보니 장 볼 사람들이 있으랴 싶었던지 지레 문을 열지 않은 점포들이 많았고, 덕분에 그나마 쪼그라 든 장세가 더 한층 쪼그라 들어 버렸으니….
그래서였을 것이다. 주막 앞을 지나는 장꾼 한 명 한 명을 볼 때마다 “자네 나왔능가” 하는 최 할머니의 음성에 여느 때보다 더 한층 반가움이 깃들고, “할매, 오늘도 일찍 나오셨소잉” 하는 상대방 음성에도 동병상련을 앓는듯한 끈끈함이 손에 잡힐 듯 묻어났던 것은.
“부침개 부쳤는디 간 맞나 쪼매만 먹어보고 가” 하는 최 할머니의 권유에 정신없이 바쁜 아침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잠시 짬을 내 못 이기는 척 한 젓가락 입에 베어문 것도, “할매, 나 이거 먹었응깨 천원 놓고 가께 잉” 하고 은근슬쩍 마수걸이를 해주려다 최 할머니로부터 “뜨건 물을 확 쏟아 붓기 전에 언능 그냥 가지 못혀?”하는 불호령을 들은 것도 아마도 그래서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