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겨울 햇살 같은 여자를 만나고 싶다.'
십여년전, 어느 추운 노천주점에서 소주를 기울이던 밤. 지금은 연락도 되지 않는 선배가 나직이 읊조리던 말.
취기 때문인지.. 추위 때문인지.. 감상을 지극히 경멸하던 선배의 입에서 나온 뜻밖의 말에 집어들던 안주를 떨어뜨릴 뻔한 기억이 난다.
그말을 내뱉던 순간의 선배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잘 보아두었어야 할 것을..
아이들에게 비유를 가르치지만 때로 비유가 불가능한 것들이 있다고 말하곤 한다.
예를 들자면 말이야.. '겨울 햇살 같은 여자를 만나고 싶다는 ..'
가슴속에 만가지 형상으로 피어오르는 말..
아이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사실 나도 이해하지 못한다.
타인의 외로움과 갈망을 어찌 헤아릴 수 있으리오.
'형 취했어요? 그만 일어나요'
그 때는 알지 못했던 한 인간의 상처를, 구원의 갈망을, 낮은 읊조림을. 기억하고는 있어야 한다. 해묵은 경구처럼.
가끔씩 궁금해진다.
그 선배는 그 겨울 햇살 같은 여자를 만났을까..
한번이라도 어느 거리, 어느 길 모퉁이에서 스치듯 만났을까,
그 여자의 앞 모습을, 그 얼굴을 보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