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Travel, Asia #49 1. 시리아의 ‘팔미라’ 유적지에서 만났던 그들은 스위스에서 출발 했다고 했다. 중동에 찾아온 100년만의 한파에 나는 유적 구경이고 뭐고 다 그만두고 숙소로 도망치고 있던 중이였는데 너무 추워서 정신이 없었던지 멍청한 질문을 던지고 말았다. 그들의 대답을 듣고 보니 그랬다. “자전거 타기에는 길도 미끄럽고 너무 춥지 않니?” “그렇다고 겨울 끝날 때 까지 여기 계속 있을 수는 없으니까. 갈 길이 멀거든” 연인으로 보이는 둘은 루돌프만큼 코를 빨갛게 해서 콧물을 훌쩍거리면서도 즐거운 표정으로 나를 앞질렀다. 멀어져 가는 그들을 걱정스럽게 보는데 이탈리아의 피렌체 성당 이야기가 떠오른다. 연인이 함께 그 곳을 방문하면 절대 헤어지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런 시시한 미신에 의지하지 않더라도 저 둘은 여행을 마치고 나면 절대 헤어지지 않을 것 같다. 아니, 절대 헤어질 수 없을 것 같다. 2. 나는 자전거가 너무 좋다. 학교도 자전거로 다녔고 술 마시는 약속도 자전거로 나가서 음주 운전도 수차례요 과음이라도 한 날에는 가게 앞에 묶어놨다가 다음날 찾으러 가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자전거는 대리 운전이 없으니까. 내 인생 최초의 장거리 주행은 군대에 있을 때였다. 휴가 복귀라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같은 그 더러운 기분을 달랠 방법을 찾다가 자전거를 생각해 냈다. 내가 근무하던 부대는 경남 고성 이였고 부산에서 출발해 마산만 통과하면 바로 고성이기에 아침 일찍 출발하면 시간 안에 도착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정말, 꼭 그래야만 하겠냐는 어머니의 타박을 뒤로 하고 새벽밥을 얻어먹고는 집을 나섰다. 그리고 나는 그 날의 한적하던 지방 국도에서 ‘길’에 대한 심심한 사유를 가지게 된다. 버스를 타고 올 때는 느낄 수 없었던 길의 미묘한 고저와 지표면의 결이 자전거를 탈 때는 확연하게 드러났고 이것은 내가 가는 길에 대한 세심한 이해와 애정을 가져다 줬다. ‘내가 이 길을 간다’는 행위가 온전하게 내 것으로 여겨지니까 휴가 복귀도 나쁘지 만은 않았다. 길 중에서도 오르막길에는 더욱 큰 가르침이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오르막길을 오른다는 것은 무척 고통스럽고 지난한 일이였고 작열하는 8월의 뙤약볕은 내게 자꾸만 포기를 종용했었다. 모른척, 미친척, 미련스럽게 꾸역꾸역 올라 오르막길의 정점에 닿으면, 아, 바람이 가장 먼저 나를 맞아 주었는데 그것은 일종의 반전 이였다. 천국과 지옥 그리고 생과 사의. 바람에 에워싸여 내리막길을 바라보고 있으면 민망할 정도로 만면에 미소가 가득 퍼졌다. 아무도 없는 그 국도변에서 말이다. 그리고 그 미소가 잦아들 즈음 너무 당연하지만 충분히 의미심장한 사실 하나가 화살처럼 내게 박혔다, 이 세상 모든 오르막길의 배면은 내리막길 이라는. 아무리 그렇더라도 혹시 오르막이 더 많은건 아닐까 하고 본전 생각이 들기도 했었지만 그 날의 전부를 평균해 본다면 오르막과 내리막의 분배는 공정했으며 나중에 다시 집으로 돌아갈 때는 오늘 왔던 오르막이 곧 내리막이 되어 있을 것 이였다. 같은 길도 올려다 보면 오르막길이고 내려다 보면 내리막길이다. 인간의 이해(利害)가 길을 구분 짓는 것이지 길 자체는 항상 공정하다. 그리고 길은 의연하기까지 하다. 버스로만 다녀봤던 길이라 자전거로 부대를 찾아 가는건 초행길이나 마찬가지였고 역시나 길을 많이 헤맸었다. 곧게 뻗은 국도를 내 달리며 생전 처음 느끼는 혼자만의 환희에 흠뻑 취해있다가도 길을 잘못 들었다는 소리를 듣는 순간 완벽하던 길 위의 풍경은 삽시간에 거지같은 풍경으로 바뀌어 버리고 만다. 또 어떤 때는 잘 달리다가도 이 길이 맞나? 라는 의심이 들기 시작하면 놀이 공원에서 엄마를 잃은, 울음을 터트리기 직전의 아이처럼 주변을 불안하게 두리번거리다가 사실은 이 길이 맞다는 소리를 듣는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길 저편에 아이스크림을 들고 선 엄마가 보이는 기분 이였다. 같은 길을 달리면서도 환희와 불안은 찰나로 인해 나뉘어진다. 길은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의연하게 가만있는데 인간의 해석이 가만있는 길을 두고 기뻐하고 슬퍼하기를 반복하면서 혼자서 논다. 그런 인간을 생각하면 외로워진다. 그러고 보니 애초에 ‘맞는 길’이라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목적지로 통하는 길 중에서 거리가 가장 짧은 길은 존재 할 수 있겠지만 그 길을 두고 옳다 그르다를 말 할 수는 없다. 두 번째로 짧은 길이든 세 번째로 짧은 길이든 내가 선택하고 그 선택에 얼마나 충실한가가 중요한 거니까. 엉뚱한 길로 들었다 해도 두려워 할 것 없다. 길이란 결국 통하기 마련이고 그렇게 통해야 길이라고 불리어 질 수 있는 것이니까. 목적지가 분명하면 어디로든 통한다. 이렇게 해서 자전거는 나를 길로 불러 들였고 길은 나의 화두가 되었다. 그래서 길 위에서 자전거를 만나게 되면 나는 핏줄이 쓰이고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자전거에 대한 내 애정을 차치하더라도 대단한 자전거 여행자들이 많았다. 반추해 보자면, 티벳을 여행할 때, 고도 3000m에서 4000m를 오가는 ‘라싸’에서 ‘알리’로 가는 4박 5일 동안의 논스톱 침대버스 안에서 나는 죽음을 연상하며 헉 헉 거리고 있는데 그 길을 자전거로 가는, 박수 받아 마땅한 여행자가 있었다. 고통에 일그러진 그의 표정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한데 그 곳은 모든 생명을 거부하는 듯 살풍경하고 마을도 없는 척박한 땅이 대부분인 구간 이였다. 또 파키스탄에서 는 3년째 자전거 여행 중인 캐나다인 부부를 만났었는데 그들이 지나온 길을 표시해 놓은 세계 지도를 보니 남미를 지나온 길이 지도상에 울긋불긋 하게 칠해진, 서반구에서 가장 높고 세계에서 가장 긴 안데스 산맥을 고스란히 밟아 왔었다. 나는 경악하며 ‘이게 가능한가? 왜 평원을 놔두고 이렇게 긴 산맥을 따라 왔는가?’를 물었지만 그들은 대답은 않고 웃기만 했다. 후에도 이들이 지나온 길은 교훈처럼 내게 남아있고 ‘사서하는 고생’이라는 여행의 속성을 곱씹어 보게 만든다. 그 밖에도 세계에서 제일 고도가 높은 도로인 인도의 ‘까르뚱 라'를 넘던 사람들, 우기에 캄보디아의 진흙길을 달리던 중년의 아저씨, 세상에서 가장 느리게 가는 걸 자랑하던 60대의 이탈리아인 노부부도 있었다. 이들을 만났을 때 마다 나는 박수와 격려를 잊지 않았었고 주머니나 가방에 먹을거리라도 들었을 때는 아끼지 않고 내어 주었다. 그렇게 그들을 배웅하고 나면 나는 ‘파리(Paris)’에 한걸음 더 가까워졌음을 음미하며 담콤한 몽상 속으로 빠져든다. 이쯤해서 몰래 숨겨놓은 자식 같은 내 자전거 여행 계획을 털어놔야겠다. 나는 프랑스를 꿈꾼다. 예술로 풍만한 나라, 똘레랑스(‘관용’의 프랑스어, 한국 사회에 부재하는 많은 것들 가운데 가장 치명적이라고 생각 드는)의 나라, 무상 주택을 요구하는 노숙자들의 대 정부 시위에서 대법원은 ‘모든 인간은 주택에서 살 권리가 있으므로 정부는 노숙자들 에게 무상으로 주택을 공급하라’는 결정을 내린 나라, 그런 시위가 가능하고 그런 판결이 가능한 이상한 나라, 연례행사로 벌어지는 파리 지하철 노조의 그 유명한 파업에 시민들은 불편해 하면서도 노동자들의 권리 요구를 당연하게 여기는 나라, 세상의 모든 연인들에게 권하고 싶은 내 인생 최고의 고전 영화 ‘줄앤짐’과 나를 영화 만드는 사람으로 인도한 ‘퐁네프의 연인들’을 만든 나라, 그리고 홍세화 선생이 망명지로 선택했던 나라, 프랑스. 프랑스는 나의 오래된 연인이기도 하고 성지이기도 하다. 언제, 어떻게 끝나게 될지 모르는 나의 이번 여정은 정해진 길은 없지만 파리라는 거대한 종착지를 가지고 있다. 파리에 닿으면 드디어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일만을 남기게 된다. 그때 나는 비행기가 아닌 자전거로의 귀향을 선택할 것이다. 그동안 짊어지고 다녔던 무거운 배낭은 자전거에 실고 똑딱이 카메라 하나만 달랑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들을 완전하게 몸으로 읽으면서, 몸을 짜서 나오는 땀을 연료로 천천히, 천천히, 아주 천천히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래서 자전거의 이름을 ‘달팽이’라고 지어 놓았다. 아직 한참 남았지만 나만의 성지 순례가 될 ‘파리’와 ‘달팽이’는 여행하는 나를 존재하게 하는 당위이자 근원적인 힘이며 지난 10년간의 나를 이루어 온 것 들을 집대성 하는 귀향길이 될 것 이다. 오늘도, 언제가 될지 모르는 그날까지 하루가 더 가까워진 셈이다. _팔미라, 시리아, 2008.
호모트레블쿠스
2009-01-25 17: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