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오규원
살아 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튼튼한 줄기를 얻고
잎은 흔들려서 스스로
살아 있는 몸인 것을 증명한다.
바람은 오늘도 분다
수만의 잎은
제각기 몸을 엮는 하루를 가누고
들판의 슬픔 하나
들판의 고독 하나
들판의 고통 하나도
다른 곳에서 바람에 쓸리며
자신을 헤집고 있다.
피하지 마라
빈 들에 가서 깨닫는 그것
우리가 늘 흔들리고 있음을.
**
여자 나이 중 최고의 전성기라는 '크리스마스'를 허투루 보내놓고 나니 '어라?' 싶은 거야. 나는 스물 다섯 살에는 무언가 굉장한 일이 생길 줄 알았거든. 굉장하기는 커녕 굉장하지 않은 일들이 굉장히 많았지. 아무리 곱씹어봐도, 되새겨봐도, 반성할 일도, 후회할 일도, 성공적으로 해낸 일도, 죽고 싶을 만큼 실패한 일도, 아무 것도 없었지 뭐야. 정말 굉장하지 않니. 내가 내년 이맘 때 '작년에는 뭘 했더라'고 떠올렸을 때 아무 것도 기억에 남아있지 않을 거라는 거잖아. 그렇다고 매 해마다 굉장한 일이 생긴다면, 그 굉장한 일들은 굉장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을 거야. 그래서 나는 내 스물 다섯을 살았던 이천팔년이 별 두 개 반은 받아도 된다고 생각해. 이 정도면 선방(善防)이잖아?
아니, 근데 나 올해 결혼한다고, 세 명이나 청혼할테니 선택에 신중을 기하라고 얘기했던 수원역 앞 점집 아줌마는 지금 뭐하시나요. 결혼하기 전에 남자친구 데리고 궁합 보러 오라고 했던 아줌마, 지금도 점 봐주고 계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