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Travel, Asia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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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 읽을 때와 영화 볼 때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
여행 나와서 나로 하여금 가장 집에 돌아가고 싶게 만드는 것은 다름아닌 '한글로 된 종이책'과 사놓고 보지 못한 DVD들이다.
그것들만 생각하면 얼른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고 싶어진다.
그래도 여행은 해야겠으니 아쉬운대로 영화와 E-Book을 다운 받아 손바닥 만한 PDA 화면으로 보며 급한 갈증을 달랜다.
'교보문고'를 끌고 다니고 '메가박스'를 머리에 이고 다니지 않는 이상 해소 될 리 없는 아쉬움인거고
코앞에 두고 봐야하는 PDA만 해도 지금 내 처지에서는 그저 감지덕지다.
책과 영화가 주는 환희를 말로 다 하자면 끝도 없겠지만
내 실존에 미치는 가장 현실적인 수혜를 들면 그것은 '삶에 대한 용기'일 것이다.
'살아야 겠다'와 '살 수 있겠다'와 '살고 싶다'를 모두 아우르는 총체적 '삶에 대한 자극' 말이다.
한 권의 좋은 책, 한 편의 좋은 영화가 주는 감동은 내 안에서 '삶에 대한 용기'로 응결되는 것이고
나는 그 용기를 태워서 생기는 에너지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뜬금없이 책과 영화를 들먹이며 삶을 이야기하는 까닭은 트럭인지 버스인지를 알 수 없는 저 탈것에 얹혀있는 동안
한 권의 좋은 책이, 한 편의 좋은 영화가 주는 그 이상의 '삶에 대한 용기'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나와 '세계'를 이어주는 매개라는 측면에서 여행이 곧 책읽기고 영화보기다.
그들의 팔뚝에서 흐르는 땀방울이 내 팔뚝의 땀구멍으로 역류할 때가 몸으로 읽는 한 권의 책이였고
그들의 코에서 나온 체온 그대로의 공기가 다시 내 코로 들어올 때가 몸으로 보는 한 편의 영화였던 것이다.
아, 여행이 결국 내가 쓰는 책이였고 내가 출연하는 영화였구나!
내 여행의 기네스북에서 면적대비 승객 수 부문의 종전 기록을 코웃음치며 갈아치워버린 그들과
충분한 작별 인사를 나눴는데도 뭐가 아쉬운게 남았는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들중 몇몇이 오랬동안 길게 손을 흔들어 준다.
살아야 겠다, 살 수 있겠다, 살고 싶다.
_바간, 미얀마,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