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Travel, Asia #32 _ 방을 보여 달라고 했다. 바닥에는 더께가 새카만 카펫이 깔려있고 삐걱거릴게 뻔한 철제 프레임 침대가 놓여있었다. 잦은 정전을 의미하는 촛불이 놓인 협탁 하나와 함께. 방은 마음에 차지 않지만 꾸미지 않은 소박한 정원과 다른 투숙객이 없어 전세낸듯한 조용함이 마음에 들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윗층의 다른 방을 보여 달라고 했다. 맙소사. 모두 8개의 큼직한 창이 달려 쏟아지는 빛이 가득했고 손때가 부드럽게 앉은 목재 침대에 꽃무늬 시트가 깔려있는 깨끗하고도 화사한 방이였다. 물론 아주 약간 더 비싼 방이긴 한데 그래도, 이 아줌마 장사 수완이 너무 없으시다. _ 3일을 묶는 동안 오며 가며 보니 중년의 주인 부부는 분주했다. 1년중 4개월 남짓만 길이 허락되는 라다크의 대목을 맞이하느라 묶은 방들을 새단장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 원래의 일, 보리밭과 텃밭들 또한 응석받이 아이들처럼 부부의 집을 떡하니 두르고 앉았다. 그곳의 보리밭들이 바람과 만날때의 풍경은 보고만 있어도 질식할것 처럼 황홀했었는데 부부 또한 그 보리밭 앞에 섰을때는 숨이 막혔을 것이다. 나와는 다른 이유로. 산책을 나가며 보니 뒷뜰에서 아줌마가 자리도 깔지 않은채 낮잠을 자고 있었다. 흙바닥인데. 앞뜰에서는 아저씨가 그렇게 자고 있었다. 둘이서 꼭 같은 담요를 베개 삼고서. 그들의 질박해 보이는 낮잠 앞에 내 발걸음이 묶여 버렸다. 한참을 숨 죽이고 그 앞에 서 있으니 내 생각의 강이 엉뚱한 곳으로 물꼬를 튼다. 일 할 수 있어 행복하고, 일 한 만큼 행복 할 수 있는 '노동'이 가진 원래의 숭고한 의미 속에서 정직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어쩌면 우리보다 행복한 건지도 모르겠다. 이들은 대출 받을 일도, 신용카드 결제일도, 꾸역꾸역 잘도 오르는 전세값이란 것도, 주식 투자라는 것도 없는, 더 나은 보장을 들먹이며 불안을 조장하는 보험 상품은 더더욱 없는, 천민자본주의에 농락 당할 일 없는 삶을 살고 유기농 보리도, 미국산 수입 보리도 걱정 해 본 일 없이 그냥 제 집 앞의 보리에만 정성을 다 하며 살고 있다. 어떠한 물질적 가치나 부의 축적도 가져다 줄 수 없을 단순해서 아름다운 삶이다. 깔끔하고 개운한. 이들 부부의 삶에다가 내가 지향해야 할 미래의 내 인생을 포개어 놓으며 우리가 가진 '행복'의 가치를 만들어내는 한국 사회의 주술적인 기조들, 한국을 정신적 3류 국가로 몰아가며 미래를 담보로 국민들의 '오늘'을 진공으로 만드는 경제며 개발이며 3만불이란 단어들을 곰곰히 되씹어본다. 여행이 나를 '행복'을 의심하게 만든다. _ 알치, 라다크, 인디아, 2008.
호모트레블쿠스
2008-08-24 2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