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Travel, Asia #31
25년쯤 전이다.
그 이름마저도 사랑스러운 '습자리'라는 부산의 작은 바닷가 가까이에 살았던 그는
오똑한 로고가 아직도 기억에 선연한 '삼천리'자전거를 타고 일터를 다녔는데 어쩌다 일찍 퇴근이라도 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그의 어린 아들을 뒤에 태우고 해질 무렵의 동네를 한바퀴씩 돌고는 했었다.
세월이 흘러 그의 아들은 서른 즈음이 되었고 황망한 삶이 봉인시켜버린 유년의 추억들을 여행이 들춰내자
7개월만에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7개월 만이라니! 괘씸도 하지, 역정이 대단하시다.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냐고 투정같기도 한 호통을 쏟아내시더니 불같던 그 화가 채 식기도 전에
아픈데는 없냐고, 다친데는 없냐고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하는 아들인것 처럼 물어 보신다.
갑자기 '논어'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부모가 자식에게 바라는 단 한가지는 자식의 건강일 뿐이라는.
제 자식이 서른살이나 먹었는데도 그렇게 걱정이 되실까?
아버지와 10년을 넘게 떨어져 살았고 1년에 한번쯤은 따로 만나 같이 밥을 먹는데
반주라는 이름으로 상에 오르는 소주는 몇분 지나지 않아 상 위의 주인공이 되고 식사로 나왔던 것들은 안주가 되어버리고 만다.
음식을 나르던 식당 아줌마들은 오며가며 보고 듣다가 의심 스러운지 부자 지간이냐고 물어보고는
꼭 친구 같다는 말이라도 할라치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나 지을만한 표정을 지어 보이시던 아버지.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이번 여행을 마치고 귀국하면 배낭 내려놓는대로
아버지 한테 달려가 여행 동안 밀린 소주 한 잔 청해야겠다.
한 움큼은 더 불어났을게 분명한 흰머리는 또 나를 가슴 저미게 만들겠지.
여행이 사람을 계면쩍게 만들기도 한다. 새삼스럽게 아버지를 다 보고싶게 만들고.
_알레포, 시리아, 2008.